견고하고 독보적인 문장,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서사
작가 배수아의 새로운 장편소설
“더 이상은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막연하고도 암울했으며,
더 이상은 아무런 행복도 불행도 느낄 수 없었고, 그러므로 불가능하게도
그를 찾아서, 걸어서 여행을 떠나야겠다”
그녀의 소설에는 상투적인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배수아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은 오직 배수아의 소설에만 나온다.
그래서 배수아는 하나뿐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2011년 봄부터 여름까지 자음과모음 인터넷카페에 연재된 배수아의 13번째 장편소설 『서울의 낮은 언덕들』이 출간되었다. 현실에는 없는, 낭송극 전문 무대 배우라는 주인공의 직업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며 그가 어느 날 문득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 먼 나라 낯선 도시와 낯선 사람들을 방문하는 여정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언제부터인가 ‘에세이형 소설’, ‘소설과 에세이의 혼종’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배수아만의 비서사적 소설세계 가장 깊숙한 곳까지 이어진다.
한국문학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마이너리티의 감성, 배수아
배수아,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흐름 속에도 유난히 낯설고 독특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이 작가는 그후 18년 동안 6권의 소설집, 13권의 장편소설, 1권의 에세이, 여러 독일어 번역문학을 쉼 없이 선보이며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번역문학가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갔다. 그 과정에서 배수아는 내러티브 소설 작법에 따르지 않고 배수아 고유의 독특하고 견고한 문학적 세계를 창조했다. 그 세계에서 ‘소설’이란 구체적인 서사구조와 인물 없이도, 미문이나 아포리즘에 기대지 않고도, 작가와 화자의 의도적인 중첩 속에 사유와 문장을 쌓아나가는 방식으로 완성되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배수아의 소설은 언제나 양극단의 반응을 얻었다. 그의 소설이 지루하고 난해하여 읽는 것이 아니라 해독해야 한다고, 그의 문장이 번역투의 비문이라고 하는 ‘대중’이 존재했고, 또 그의 소설이 일관되게 담고 있는 단단한 언어적 사유와 상상력에 기반한 미적 성취에 열광하는 ‘매니아’가 존재했다. 꿈과 환상이라는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전작 『북쪽 거실』(2009) 이후 그보다 더 심화되고 확장된 모습으로 완성된 세계가 이번 장편소설 『서울의 낮은 언덕들』이다. 서사를 압도하는 진술체의 문장은 이제 ‘낭송극’이라는 무대로까지 나아간다. 사유의 문장을 통해 서사가 아닌 서사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는 문자를 통해 음성(낭송)으로 감정과 감각을 확장시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