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세계의 종말을 꿈꾸는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꿈꾸는가
'경계 간 글쓰기, 분과 간 학문하기'가 한국의 문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9권.『묵시록의 네 기사』는 좀비 아포칼립스 등의 묵시록과 슬라보예 지젝 등의 묵시록 담론, 문학과 정치에 관한 정치철학적 논쟁, 유토피아에 대한 구제비평 등을 '묵시록'이라는 단 하나의 키워드로 관통하는 복도훈의 문학, 문화비평서다. 슬라보예 지젝과 〈28일후〉, 조르조 아감벤과 〈워킹 데드〉, 카를 슈미트와 〈지구를 지켜라!〉 등 지적인 담론과 대중문화를 흥미진진하게 뒤섞는 이 책은 그간 한국의 비평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물었던 ‘사유의 콜라주’이다.
『묵시록의 네 기사』가 출간되는 2012년은 지구 종말론, 인류 멸망설 등 그 어느 때보다 미래에 대한 지배적인 불안감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의 도래에 대한 은밀한 희망이 교차하는 때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 만든 많은 것들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파국과, 억압적인 세계를 뒤로 하고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을 표출한 혁명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쓰나미의 재앙이 한쪽에 있다면, 중동의 급진 혁명과 미국 뉴욕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다른 쪽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최근 몇 년에 걸쳐 급부상하기 시작한 국내외 묵시록 서사와 담론의 발생과 현황을 국내외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심급과 맥락을 두루 살피는 문제작이다. 암울한 현실에 대한 희망 없음을 시종일관 냉정하게 응시하지만『묵시록의 네 기사』는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희망을 역설하고 있다.
‘사유의 콜라주’를 지향하는『묵시록의 네 기사』는 한편으로는 한국문학의 우세종으로 부상하는 묵시록과 SF에 대한 비평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최초의 책일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뛰어난 SF 블록버스터인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를 밑절미로 삼으면서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주변 장르로 소홀히 취급되어왔던 묵시록, SF 등 미래의 형상화에 대한 문학적 실험과 그 가능성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묵시록의 네 기사』는 듀나, 윤이형의 좀비 묵시록, 주원규의 천년왕국 서사, 김애란, 김사과, 김현영, 박민규, 조하형, 황정은 등으로 이어지는 각양각색의 묵시록과 재난서사를 분석하면서 장르적 혼효를 통한 소설 미학의 갱신, 리얼리티의 핵심으로서의 환상에 대한 재평가, 현재와의 단절로서의 미래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 등을 모색한다. 2008년부터 과학소설과 묵시록에 대한 글을 써온 저자의 예감대로 최근 2~3년 동안 한국문학은 묵시록적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만개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SF와 묵시록은 한국문학의 주요한 한 축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저자는『묵시록의 네 기사』에 이어 국내의 SF에 대한 본격 비평을 묶은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다.
『묵시록의 네 기사』에서 종종 말하는 것처럼 세계의 종말 대신에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확실히 지금까지 우리는 소행성이 지구를 파괴하는 할리우드 묵시록을 구경해오던 관객이었다. 그러나 2011년 10월 9일, 뉴욕 주코티 공원에 좀비로 분장한 OWS 시위대와 시위대에 둘러싸인 지젝은 함께 외쳤다.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파괴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목격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원하는 것이 실현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 말라.
이렇게『묵시록의 네 기사』는 정치적 비평의 시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시종일관 지난 몇 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삶에서 식민화된 어휘인 ‘미래’, 시장근본주의자들과 1%의 인류에게 점령당한 그들만의 ‘미래’라는 어휘를 끈질기게 재탈환하고자한다. 저자는 자신들만의 미래를 식민화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시장주의자들과 국가주의자들이 결탁하는 한, 얼어붙은 미래를 가르는 ‘도끼날’의 상상력이 배제된, 남은 자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파괴와 생성의 묵시록적 상상력에 동참하는 일이 문학가뿐만 아니라, 억압과 고통 속에서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공통된 과제임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