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하는 상상력으로 무장한 정명섭의 ‘좀비 매뉴얼’
“초기 봉쇄에 실패한 이후 좀비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좀비가 창궐한 대한민국,
이를 위한 생존 지침서가 마침내 등장했다!
좀비에게는 치명적 약점, 인간에게는 유일한 백신이 될 단 하나의 기록
오랫동안 기다렸고, 마침내 완성됐다. 변덕스러운 진화의 산물에 불과한 인간 종에 대한 믿음마저 희박해지는 이 절멸의 시대에 경쾌한 입심과 필력, 진정한 좀비 덕후(좀덕!)만이 발휘할 수 있는 포복절도, 종횡무진의 상상력으로 작가는 한국형 좀비에 대한 ‘믿거나 말거나 박물지’를 썼다. 국내 최초가 될 우리의 좀비 박물지는 만방에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우리는 좀비 제너레이션이다!
- 복도훈(문학비평가)
2000년대 이후 최고의 셀러브리티는 좀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8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조지 A. 로메로 감독이 처음 만든 좀비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 게임, 만화를 거치며 끊임없이 진화했다. 수십 년의 지난한 과정 끝에 세계적 이슈가 된 좀비는 이제 우리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다. ‘좀비PC’라는 단어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인간을 향한 증오로 달려드는 좀비는 사회 붕괴 현상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광학렌즈다.
살아있는 시체 좀비는 존재한다. 아이티 부두주술로 되살아난 이후 전 세계에서 그 증거가 보도되고 있다. 잠든 당신의 등을 두들겨 막무가내로 살점을 뜯어먹을 날이 머지않았다. 그렇다면 좀비가 창궐한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좀비 제너레이션??은 좀비가 창궐한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완벽 공략집이 들어 있는 논픽션이다. 작가 정명섭은 카페에서 우연히 발견한 〈좀비 대응 매뉴얼〉을 보고 자신만의 생존 지침서를 기록했다. 작품은 좀비 바이러스의 발생-대비-이동-탈출 과정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구체적 지리와 법적 제도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한국 맞춤식 생존강령 그 자체이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에필로그 : 남겨진 자들을 위한 메시지〉에 자신이 바라보는 세기말의 모습을 무덤덤하면서도 절박한 심정으로 적어 내려갔다.
문명화 21세기, 좀비 바이러스를 막을 백신은 존재하는가?
2007년 11월 6일, 미국 고고학 연구소가 발행하는 〈고고학(Archaeology)〉지에 고대 이집트 유적지 히에라콘폴리스의 발굴단장인 레니 프리드먼의 좀비 관련 기사가 올라 관심을 끌었다.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 시대 히에라콘폴리스에 좀비가 실제로 존재한 흔적들을 무덤 발굴을 통해 입증한 것이다. 무덤 내부 벽에는 머리 없는 좀비 벽화가 걸려 있었으며 수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시신들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에도 좀비 증명에 관련된 보도는 끊임없이 올라오지만 하나의 가설일 뿐, 이를 진단하고 넘어가는 공식적 연구는 없었다.
문명사회에서 불치병이란 없으며 그 너머로 생명연장의 꿈을 꾼다. 하지만 고도의 문명사회에서도 에이즈나 신종 인플루엔자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상당수다. 신종 바이러스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 확산을 막는 것이다. 정확한 보고,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 죽음은 여전히 나타난다.
??좀비 제너레이션??은 좀비와 마주했을 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유일한 처방이다. 좀비에 대한 물리적 처방, 백신이 전무한 가운데 급작스러운 좀비 아포칼립스Zombie Apocalypse가 발생하면 우리는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좀비가 등장했다는 과감하고도 용기 있는 상상력으로 좀비사태의 일련 과정을 기록한다. 좀비의 습성, 번화가와 좀비의 상관관계, 좀비를 처치하기 가장 좋은 총 사용법에서 일상에서 구할 수 있는 도구 제작법, 도시부터 섬 지역까지 각 지역마다의 생존법을 담아내며 좀비 창궐의 서막을 알린다.
실생활 도구를 활용한 무기, 한국 지형에 맞는 다양한 생존법까지!
이 작품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묘미는, 실생활에서 재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웃이자 좀비사태 이후 동료가 된 창석 씨는 철창을 뜯어내고 자신이 부엌에서 쓰던 칼을 이어 붙인다. 작가는 자신의 솜씨를 발휘해 식량을 비축하고, 가게를 알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기억으로 탈출 경로를 계획한다. 그리고 동료가 된 두 남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들의 새로운 동료를 맞이하고 약탈자들을 멀리한다.
경산으로 이사 간 부모님과 진도로 시집 간 여동생을 위한 매뉴얼 역시 이 작품의 무기다. 부모님과 여동생은 카페 창업 비용을 보태주느라 지방으로 이사를 간다. 전화가 아니면 연락이 어려운 상황에서 통신망은 끊기고, 생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작가는 도시에 사는 본인과 달리, 인적이 드물고 고립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가족들을 위해 작가는 먹먹한 심정으로 매뉴얼을 작성한다. 농촌 지역에서부터 섬 지역, 해안 지역, 산간 지역 등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떠올리며 대피 방법과 함께 먹고살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에서 안전지대를 들은 일행들은 좀비를 피해 골목과 큰길을 오가며 위험한 여정을 떠난다. 쉽게 종료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작가가 만든 매뉴얼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릴지 알 수 없다. 매뉴얼을 마치면서 작가가 에필로그에 쓴 메시지는, 좀비사태가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며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