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에 자신을 투영시키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동화작가이다. 안데르센의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린이만이 아닐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 〈인어 공주〉,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나이팅게일〉, 〈엄지 공주〉등의 작품들은 어른이 되고 난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 명작들이다. 그리고 세대를 거쳐서 이어진다. 이렇게 안데르센의 동화들이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그 속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의 주인공은 바로 안데르센 자신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평범한 다른 오리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지만, 결국에는 아름다운 백조가 되어 날아가는 미운 오리 새끼의 모습은 바로 남들과는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남들과는 다르게 성공한 안데르센 자신의 모습이다. 〈인어 공주〉에서의 인어 공주도 바로 안데르센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왕자를 향한 인어 공주의 절망적인 사랑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안데르센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동화를 읽은 독자들은 동화 속에서 안데르센이라는 한 인간을 만나게 되고, 그의 모습이 투영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영원한 어린이의 친구로 기억되다
인생의 불우한 조건 속에서도 그에게 멈추지 않는 열정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가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가난, 어린 나이에 스스로 선택한 코펜하겐에서의 힘겨운 삶, 주변의 비웃음, 사랑의 좌절, 문단의 편견, 평생에 걸친 독신 생활의 고독 등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문학과 예술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에 있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우리에게 인간 영혼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인물이다. 안데르센의 일생은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싸워나가는 고독한 과정이었다. 안데르센은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비천한 출신이었다. 출신 배경부터가 그의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런 출신 배경 때문에 작가로 성공한 후에도 그의 조국인 덴마크로부터 인정받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 동화를 출판했을 때, 덴마크 문단은 안데르센에게 야유와 조롱을 보냈다. 그의 문학은 오랫동안 이해받지 못했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했다. 그것은 모두 열정 덕분이었다. 안데르센은 어렵고 고독한 과정을 극복해나가면서 꿈을 이루어간다. 열네 살에 집을 나와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 배우의 꿈을 키우고, 힘겨운 문법학교 생활을 견뎌냈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통이 있을 때마다 극복해나갔다. 그런 경험을 통해 안데르센은 점점 성숙해갔다. 그런 모든 것들이 안데르센의 작품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에 최고의 찬사를 받는 작품들이 탄생된 것이다.
안데르센이 단지 작가로서 성공했다면 우리는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안데르센이 살아온 인생이 바로 안데르센의 작품으로 승화되었기에 훌륭한 작가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참된 위인으로 기억된다. 안데르센이 자신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가혹한 시련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내고 인생을 창조해내는지 들여다보자.
〈줄거리〉
안데르센은 1805년 4월 2일 새벽 한 시, 덴마크 오덴세의 궁핍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안데르센의 집안은 더욱 가난해졌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따라 극장에 가게 된 어느 날, 안데르센은 극장에서 〈시골 정치인〉과 〈도나우의 처녀〉를 보게 되었다. 처음 본 연극에 어린 안데르센은 홀딱 반하고 말았다. 오직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 하나만을 가지고 1819년 9월 4일 일요일 오후 안데르센은 마침내 오덴세를 떠나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이, 빈털터리의 신세로 거리를 배회하기만 했다. 열일곱 살의 안데르센은 노래, 무용, 희곡 그 무엇을 통해서든지 무대에 오르고자 했다.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 후 왕실의 후원을 받아 문법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도 진학했다. 그러나 그가 세계적인 동화작가로까지 성장하게 될 때까지는 수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분노와 불안, 고독과 소외감, 수시로 찾아드는 우울 그리고 절망감과의 내적인 싸움이 늘 그를 따라 다녔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비천한 출신 배경, 여성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괴로움, 불확실한 성적 정체성 등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들은 안데르센으로 하여금 더욱더 창작의지를 불타오르게 만들었고, 자신의 고독하고 외로운 모습들이 반영된 훌륭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875년 그의 마지막 생일을 성대히 보내고 난 후 얼마 뒤인 1875년 8월 4일 안데르센은 그가 자신의 집처럼 평화와 안락함을 느끼던 롤리게드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