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본을 초판본 순서에 맞게 현대어를 재편집
“사랑의 비밀은 다만 …님의 잠과 시인의 상상과 그들만이 압니다”
불의에 한 치의 양보도 없던 사상가가 쓴 감수성 풍부한 섬세한 서정시들
폭압 앞에 굴복하지 않은 꼿꼿한 정신의 소유자가 그린 ‘님’은 누구인가
냉철한 사상가 한용운, ‘님’을 향한 애달픈 연가로 스스로를 위로하다
한용운의 일생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의 사랑은 협소하지 않았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가 ‘군말’에 쓴 대로 보통의 우리가 생각하는 님이란 우리 자신의 ‘그림자’로서 우리들은 그 안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혹은 그렇게 탐욕을 부리다 악으로 빠져 버리고 마는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한용운의 ‘사랑’은 온 인류와 우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것으로서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 중생들을 기루어하며 탄생한 연시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어쩌면 님은 해답을 알지 못하여 침묵할 수밖에 없던 한용운 그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
이 시집은 1926년 총 88편을 수록하여 발간된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초판본 순서 그대로 정리하여 첫 발간 당시의 의미를 살리되 표기법은 원시의 느낌을 훼손하지 않게 현대어를 따름으로써 읽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편집하였다.
시대적 약자로서의 위치가 한용운의 섬세한 감수성을 꽃피게 해 주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한용운의 수형기록표에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의분에 가득 찬 눈빛으로 정면을 쏘아보는 그의 사진이 실려 있다. 하지만 그의 실루엣과 위로 치켜 뜬 그의 눈빛을 보면, 공포 자체였을 그 시간에 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저항한 젊은이의 내면이 전해지는 듯해 마음이 아파 온다.
한용운은 일제에 의한 국권피탈뿐만 아니라, 그의 어린 시절에는 시대의 격변 앞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한 것은 물론 사욕에 따라 권력을 휘두르려던 집정자들과 그 정치적 혼란 속에서 발생한 동학동민운동, 갑오개혁 등의 사건, 그리고 외세의 침략 등을 겪으며 성장하였다. 결과적으로 시대적 여건이 한용운을 독립운동가로 성장시킨 무거운 자양분이 되었고, 그를 비롯한 우리 민족이 계속해 처하였던 약자와 희생자로서의 위치는 한용운에게 섬세한 감수성을 꽃피게 해 주었다.
이후 한용운은 승려로서 불교계의 친일 행위와 비리 등을 규탄하고, 불교 잡지를 발간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민족의식을 고취해 나가는 등 맹렬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3ㆍ1운동을 주도하여 실행한 일로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와 같은 냉철한 사상가이자 활동가인 한용운이 내설악 백담사에서 탈고한 총 88편의 시들을 묶어 ‘님의 침묵’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내놓자 사람들은 도대체 그 ‘님’이 누구인지를 두고 의견이 구구하였다. 시 속 화자의 여성적 어조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절절함을 두고 님은 말 그대로 사랑하는 님이라는 사람도 있고, 종교적 해탈이라는 사람도 있고, 고난에 찬 우리 민족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한용운 삶의 스펙트럼이 알려주듯 ‘님의 침묵’ 속 ‘님’을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짓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