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영화 이야기(제3의 사나이 ~ 007영화 발달사)
영국에서는 1896년 로버트 S. 폴이 디어트로그래프를 발명함으로써 프랑스·미국·독일과 함께 영화 발명국의 명예를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초창기에서부터 20년대까지 별로 이렇다 할 세계적인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은 미국·프랑스·독일 등 각국의 위세가 너무나 강하여, 그들의 시장화가 된 탓일수도 있다.
1925년에 와서 영국 상원(上院)에서 뉴튼 경(卿)이 영화의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영향을 크게 역설한 뒤 영국영화를 외국의 시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이른바 영화각성운동(映畵覺醒運動)이 일어났다.
유명한 영국 영화법(英國映畵法)이 제정되었고, 그 속에서 쿼터법(法)을 실시하여 할당제(割當制)에 의해 영국영화를 육성하도록 했다.
이후부터 알렉산더 코더가 이끄는 런던 필름에서는 30년대에 접어들면서 명작 〈헨리 8세의 사생활(私生活)〉 〈캐서린 여황(女皇)〉 〈돈 환〉 〈유령(幽靈) 서쪽으로 가다〉 등의 작품이 나왔고, 고몽 브리티쉬에서도 〈39야(夜)〉 〈킹 솔로몬〉 〈싸우는 민족〉 〈사막의 화원〉 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1 영국영화의 감상
1.1 전전의 영국영화
1.2 전후의 현대 영국영화
2 영국영화의 전망
2.1 영국 영화의 발전
2.2 프리 시네마
3 작품 감상
3.1 밀회
3.2 햄릿
3.3 제3의 사나이
3.4 장거리 주자의 고독
3.5 007 위기일발
3.6 내크
3.7 마르키 드 사드의 연출하에 사랭통 정신병원의 환자가 연출한 장 폴 마라의 박해와 암살
3.8 오뎃사 파일
3.9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