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개신교·가톨릭이 종교와 종교, 종교와 사회의 경계를 넘어
오늘날 종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와 개신교, 가톨릭의 대화”
역사상 종교 간 대화는 사회 참여적인 성격이 컸다. 대표적인 예가 3·1 운동이다. 2019년이면 100주년을 맞이하는 3·1 운동은 천도교가 주도하고,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참여했다. 이는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이 사회 문제를 직시하고, 민중의 고통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되었음을 상징한다. 불교·개신교·가톨릭이 서로 만난 《지금, 한국의 종교》는 사회 참여적인 종교 대화의 전통을 계승 및 발전한다고 평할 수 있다. 2017년은 루터와 칼뱅을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이한다. 악습과 부패에 물들어가던 구종교를 개혁하여 새로운 종교로 거듭났듯이, 한국의 종교도 개혁이 필요하다. 이 책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과 같은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지구 한편에서는 테러 및 전쟁까지 불사하는 IS가 활개를 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신도 수 감소가 증명하듯 세속화와 더불어 탈종교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 사회도 근대화와 일본의 제국주의, 한국 전쟁과 분단을 거쳐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했다. 종교는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현상과 맞물려, 때로는 사회 현상을 주도하며 우리 앞에 현신한다. 그렇기에 개인적 신앙으로써의 종교만을 강조하는 것은 부족하며 제도적 종교를 주목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종교는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정의 실현과 화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회와 사찰은 대형화되고 있으며, 상품화된 영성을 중심으로 신앙은 상업화되었다. 종교적 권위를 빙자한 권력의 사유화는 종교에 대한 불신의 원인이다. 이러한 현실을 부끄러워하고 또 걱정하는 한국의 3대 종교, 이른바 불교, 개신교, 가톨릭이 모여 각 종교의 걱정거리를 토로하고 또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너는 악마다’ 혐오를 양산하는 개신교
‘내가 천사다’ 권위주의에 의존하는 가톨릭
사회를 등진 채 깨달음만 추구하는 불교
최근, 서울시청 광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기독교인들이 운집했다. 교회 모임이나 부흥회가 아니었다. 이들은 같은 날 예정된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맞불집회를 열고 각종 혐오 발언과 퍼포먼스를 행하고 있었다. 일부 개신교도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불신지옥’의 외침은 일상화된 풍경이며, 각종 반(反)집회와 극우 세력과의 연합, 혐오 발언 등의 주체로 한국 사회에 등장하고 있다. 사랑의 종교인 개신교는 왜 배타주의와 타자의 악마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을까? 종교의 특성인가, 한국 사회가 기독교를 잘못 수용한 결과인가?
종교 지도자이자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평소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가난한 교회’를 말하던 교황의 행보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 독일 신학에서 한때 “과연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마찬가지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세월호 이후 신학을 할 수 있는가?’ 가톨릭교회는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을 향해 있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이후 가톨릭은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는가?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은 이 책에서 교황의 개인플레이로 가톨릭이 점수를 따고 있을 뿐 한국 가톨릭의 팀플레이는 엉망이라고 평가한다.
이는 한국의 근대화와 맞물려 수입된 개신교, 가톨릭 그리스도교의 현주소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 종교의 자리를 지키는 불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불교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조용한 암자에서 머물거나 고담준론을 베푸는 ‘큰스님’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는가. 조성택 고려대 교수는 불교가 과연 깨달음의 종교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마치 ‘도인’을 연상케 하는 불교의 이미지가 덧입혀진 원인을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과, 이를 역수입한 한국 불교의 전통을 꼽는다.
한국 3대 종교 간 최초의 화쟁적 대화
싸우되, 평화롭게 싸우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종교포럼 장소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몰려든다. 승복과 수녀복이 한데 어우러지는 이질적인 풍경이다. 그리고 불교·개신교·가톨릭을 대표하는 지성인과 이들의 토론을 진행하기 위해 종교학자와 신학자가 사회를 맡았다. 아울러 청중도 대담에 참석하여 포럼을 풍성하게 채웠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꼽았다. 21세기, 한국의 3대 종교인 가톨릭·개신교·불교가 1년 가까이 포럼으로 만났다.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 경계 너머, 지금 여기’의 주제로 말이다.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가 불교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기도 한 김진호 목사가 개신교를,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이자 가톨릭프레스 편집장이 가톨릭의 대표로 나섰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를 각각 내부자의 시선으로 비판하며, 각 종교의 문제점과 그 이유를 진단했다. 실천이 결여된 채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불교, 사랑이 아닌 배타성을 부추기는 개신교,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가톨릭을 뼈아프지만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문제의 인식도, 그 해결 방법도 각각의 종교마다 다르다. 그러나 이들은 원효의 화쟁 사상처럼 싸우되 평화롭게 싸우며, 종교 간 경계를 넘나들면서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한다.
이 책에서는 세 발제자의 성역 없는 비판과 종교를 넘나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눈 논의와 대담, 그리고 청중들의 진지한 질문과 반론도 정리하여 함께 수록했다. 각각의 종교가 ‘무엇이 걱정인지’, ‘왜 걱정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제로 총 아홉 차례에 걸쳐 발제와 토론, 질의응답으로 구성했다. 이른바 한국 3대 종교의 화쟁적 대화의 결과물이다.
옳음‘들’의 화쟁
종교계와 한국 사회에 죽비를 내리치다
싸우되, 평화롭게 싸우는 ‘화쟁’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예화에서 잘 드러난다. 코끼리의 전모를 볼 수 없는 장님들은 각자 만지고 있는 부분이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원효는 이를 두고 모두 옳고, 또 모두 그르다고 말한다. 어떤 주장도 코끼리가 아닌 것을 언급하지 않으며 누구도 코끼리의 전모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옳음들’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각각 종교에서 바라보는 ‘옳음’이 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오만과 편견을 깨고, 도인불교에서 벗어나 ‘시민보살’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교회와 한 몸이라는, 신체 기관의 위계성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연결성에 중점을 두고 한 곳이 아프면 다른 곳도 아프게 된다는 관점에서 바울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가톨릭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가난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유와 해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각자의 옳음을 이야기하고 또 이해하며 옳음‘들’의 화쟁을 도모했다.
물론 각 종교의 방법론에는 차이가 있다.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으며 나의 평화가 세상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불교적 관점과 뚜렷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중심으로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그리스도교의 관점은 다르다. 그러나 종교가 사회적 고통에 주목하고, 가난한 자와 약자를 우선적으로 위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개별 종교와 한국 사회 속에서의 종교라는 커다란 코끼리를 더듬으며 또 그가 나아갈 바람직한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토대가 되는 포럼에서 기조 강연을 한 종교학자 오강남은 “탈종교화 시대에 불교, 개신교, 가톨릭에 소속된 중견 학자들이 각기 종교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에 대해 서로 경계를 넘어 의견을 교환하며 종교 활성화를 모색했다”라고 평하며 추천의 글을 썼다. 이 책은 각 종교의 지성인들이 종교계, 나아가 한국 사회에 내리치는 죽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