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불리는 사건에 가담한 살인자들 가운데 이 책의 주인공, 기쿠치 겐조菊池謙讓가 있었다. 그는 1893년 스물셋의 나이에 한국에 첫발을 디딘 후, 을미사변, 청일전쟁 등 일본이 일으킨 주요 사건에 개입했다. 특히 청일전쟁에서 종군기자로서 한국 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귀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국에서 자그마치 52년간 언론인이자 재야 사학자로 활동한 대표적 ‘조선통’이었다.
기쿠치의 글은 아주 쉽고 통속적인 경향으로 대중 전파력이 강했다. 게다가 그는 을미사변 현장에 있었고, 대원군과 지속적으로 친분 관계를 갖고 접촉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가 갖고 있던 역사의 현장성으로 인해 그의 글은 의심 없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한국 근대사가 벗어나기 힘든 심각한 왜곡과 굴절의 굴레였을 뿐 아니라, 이후 식민 통치 내내 자리하게 될 일본 식민사학의 출발점이었다. 칼로는 왕비를 죽이고, 펜으로는 한국사를 유린한 셈이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거물 언론인이자 재야 역사학자인 기쿠치 겐조의 활동을 통해 뼈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 현재 우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다가올 미래를 대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