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번의 당나라 역사소설 당사통속연의 96회-100회 12 완결
예시문
却說僖宗還都, 已經抱病, 勉强趨謁太廟, 頒詔大赦, 改稱光啓五年爲文德元年, 入宮寢臥, 無力視朝, 未幾卽致大漸。
각설희종환도 이경포병 면강추알태묘 반조대사 개칭광계오년위문덕원년 입궁침와 무력시조 미기즉치대점
文德: 888년 4월 ~ 888년 12월
각설하고 당희종은 도읍에 돌아와 이미 질병을 가져 억지로 태묘에 배알을 가서 대사면령을 조서로 내려 광계 5년을 문덕 원년으로 고쳐 궁궐에 들어와 누워 조회할 힘이 없어 얼마 안되어 큰 질병이 났다.
群臣因僖宗子幼, 擬立皇弟吉王保爲嗣君, 獨楊復恭請立皇弟壽王傑。
군신인희종자유 의입황제길왕보위사군 독양복공청입황제수왕걸
여러 신하는 당희종 아들이 어려 황제동생 길왕 이보를 대이을 주군으로 세우려고 하나 유독 양복공만 황제 아우인 수왕 이걸을 세우길 청했다.
傑系懿宗第七子, 爲懿宗後宮王氏所出, 僖宗一再出奔, 傑隨從左右, 常見倚重。
걸계의종제칠자 위의종후궁왕씨소출 희종일재출분 걸수종좌우 상견의중
이걸은 당의종 7번째 아들로 의종의 후궁이던 왕씨가 낳아 당희종은 한두번 몽진을 갈 때 이걸이 좌우를 수종하여 항상 중시되었다.
至是由復恭倡議, 奏白僖宗, 僖宗約略點首, 遂下詔立壽王傑爲皇太弟, 監軍國事。
지시유복공창의 주백희종 희종약략점수 수하조입수왕걸위황태제 감군국사
이에 이르러서 양복공이 논의를 주창해 당희종에게 아뢰니 당희종은 대략 고개를 끄덕이고 곧 조서를 내려 수왕 이걸을 황태제로 세우고 군사와 국사를 감독하게 했다.
當由中尉劉季述, 率禁兵迎入壽王, 居少陽院, 召宰相孔緯, 杜讓能入見。
당유중위유계술 솔금병영입수왕 거소양원 소재상공위 두양능입견
응당 중위 유계술이 금위병을 인솔하고 수왕을 맞아들이러 가서 소양원에서 재상인 공위와 두양능을 불러 알현을 들어오게 했다.
群臣見他體貌明粹, 饒有英氣, 亦皆私慶得人。
군신견타체모명수 요유영기 역개사경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