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의 대표작 《형제》 재출간
중국이 자신의 마음을 알고 싶을 때,
세계가 중국의 마음을 알고 싶을 때,
그때 펼쳐드는 위화의 소설
그런 위화의 대표작, 《형제》재출간
출간 의의
전 세계가 열광한 중국 작가, 위화의 대표작 《형제》가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재출간되었다. 격변하는 중국 현대사를 통사적?동시적으로 세밀하게 그려낸 《형제》를 놓고 〈뉴욕 타임스〉는 “루쉰의 작품이 1920~30년대의 중국을 묘사해낸 업적을 달성한 것처럼 위화의 《형제》도 그 일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위화의 작품은 중국 국내외를 통틀어 놀라울 만큼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그의 1993년 작 《인생》이 출간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순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당당왕(중국 인터넷 서점) 6위?4/28~5/5), 그의 작품은 중국 국어 교과서에도 실리고 있다. 동시에 위화는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뉴욕 타임스〉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나라에서 순회강연을 펼치고 있다.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담긴 그의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정작 중국에서는 출간되지 못했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어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도, 사회의 모순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문학인이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 참여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서구 평단은 그의 대표작으로 《형제》를 꼽는다. ‘원래 10만 자 분량의 소설을 구상했으나, […] 50만 자가 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대작인 《형제》는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1부와 2부로를 대비시켜 시대적?역사적 양극단을 보여주고, 2부 안에서는 의붓 형제인 이광두와 송강을 대비시켜 동시대에 존재하는 삶의 양극단을 보여준다. 양극단 사이의 수많은 스펙트럼까지도 촘촘히 그려내면서, 근?현대 중국 사회를 예리하고도 자세하게 묘사하며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을 구현해냈다.
2005년 《형제》가 중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엄청난 논쟁이 일었다. 소설의 일부분이 저속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에 대해 위화는 작가 서문에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했는데 저 혼자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말하며, 병든 세상에 사는 자신도 “바로 병자”이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중국. 흔히들 중국의 한 단면만 보고 판단을 내리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도대체 몇 겹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위화의 작품이 더욱 빛을 발한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여러 얼굴과 그 얼굴을 가지게 된 연유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작품에 녹여냄으로써 전 세계인들에게 중국을 들여다보는 창이 되어주고 있다.
내용 소개
격동의 중국 현대사로 소설을 짓다
비극을 그리면서도 웃음을 놓지 않고
희극을 그리면서도 한번쯤 곱씹어보게 하는, 위화 문학 인생의 대표작
나는 《형제》에서 거대한 간극에 대해 썼습니다. 우리의 삶이 바로 이러하기 때문입니 다. 우리는 현실과 역사가 중첩되는 거대한 간극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병 자일 수도 있고, 모두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극 단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과 과거를 비교해봐도 그렇고, 오늘날과 오 늘날을 비교해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_작가 서문 중에서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여자화장실에서 여자들 엉덩이를 훔쳐보다 잡혀 동네방네 조리돌림을 당한 열네 살 소년 이광두. 한 살 많은 그의 형 송강은 조용한 성격의 문학 소년이다. 성이 다른 둘은 어머니 이란과 아버지 송범평이 재혼하면서 의붓 형제가 되었다. 이광두와 송강이 형제로 맺어져 의지하고 사랑하며, 성장하던 때는 바로 문화대혁명 시기였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세찬 물결 속에서 학식이 높고 팔방미인이었던 중학교 교사 송범평은 지주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계급의 적’으로 몰려서 죽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이란은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보살처럼 매사에 너그러우시던 동네 만두 장수 아주머니도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계급의 적으로 몰려 모진 매질을 당하고, 이광두의 동네 친구도 머리카락이 길다는 이유로 계급의 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존경받는 사람들도 선량한 사람들도 무고한 사람들도, 나이와도 상관없이 누구든 계급의 적이라고 하면 사실이든 누명이든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던 시대. ‘모 주석님’의 어록을 등에 지고 판치던 맹목적?유희적인 악행들을 아무도 제어하지 못했던 시대. 평화롭고, 도덕과 질서가 있었고, 전인적이며 선량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살던 한 시대가 저물었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도 겹치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현대사의 암흑 시기를 생생히, 가감 없이 그리고 있다. 누군가는 기억해야 할, 지울 수 없는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 도덕을 파괴하고 세상을 점령한 새로운 가치관마저 무너지고,
‘돈’으로 표상되는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현대 중국 사회의 초상
두 형제는 부모를 잃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다가, 송강의 결혼으로 따로 살게 되고, 그러면서 개혁개방이라는 또 다른 시대적 변화의 물결을 만난다. 이들이 사는 소읍(小邑) 류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는데, 온 동네에 꼬마 양아치로 소문난 이광두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 어느 공장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가까스로 장애인들이 일하는 복지공장에 취직한다. 이광두는 공장 경영에 놀랍게도 소질을 보여 스무 살에 공장장에 오르고, 복지공장의 실적은 날로 수직상승했다.
자신감이 붙은 이광두는 자기 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복지공장에서 무단이탈한 채, 동네 개체사업자(자영업자의 중국식 표현) 어르신들에게 투자를 받아 대도시 상해로 떠난다. 그러나 투자금을 모조리 날린 채 빈털터리로 돌아와 복지공장 공장장으로 복귀하려 했지만 좌절되고, 현 정부청사 정문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무기한 연좌시위에 돌입한다. 시위하는 동안 이광두는 입에 풀칠이나 하기 위해 폐품 수집을 하다가 거기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일본에서 고물 양복을 수입해 내다 팔아 막대한 수익을 얻게 된다. 이렇게 점점 사업을 키워가면서 대형 사업체를 운영하게 되고, 전국을 호령하는 거부가 되어 전국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언론의 관심이 시들어버리자, 이광두는 다시 한 번 언론에 등장할 구실을 생각하다가 성 경험이 없는 처녀만 출전할 수 있는 ‘제1회 전국처녀미인대회’라는 기상천외한 이벤트를 벌이기로 한다.
위화는 ‘작가의 말’에서 “한 서양인이 4백 년을 살아야 경험할 수 있는 양 극단의 시대를 한 중국인이 겪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40년이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도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 어지러울 정도다. 이러한 중국 사회의 급변은 눈부신 발전과 참혹한 불평등의 급격한 확산을 품고 있다. 또한 사회를 지탱하던 최소한의 도덕조차 무너져버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포함한 모든 것이 이 금전적?물질적 가치로 환산되어 버린다. 중국을 이해하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렵고 복잡한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떠내려가버린 사람들
한편, 이광두의 형제인 송강은 다니던 공장이 실적 부진으로 문을 닫자 실업자가 된다. 그는 부두에서 짐꾼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치고,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다 폐병에 걸려버린다. 병원비가 무서워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던 그는 사랑하는 부인에게 돈을 좀 벌어다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류진에 온 사기꾼의 꾐에 빠져 떠돌이 장사꾼이 된다. 천신만고 끝에 손에 약간의 돈을 쥐고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부인 임홍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평생을 성실하고 착하게만 살았던 송강이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도태되어 버린다. 위화는 송강이라는 인물을 통해, 시대가 바뀌면서 올곧은 성정이 이상한 고집이나 벽창호 취급을 받는 것, 도덕적인 것이 무능한 것으로, 선량함이 미련함으로 치환되는 세태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효용을 상실해버린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송가이며, 위화는 그 안에서 계속될 남은 사람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진다.
이 작품에 쏟아진 찬사
지난 세기 세계는 루쉰의 작품을 통해 중국을 알았다.
이제는 위화의 《형제》가 그 일을 해냈다. ? 〈뉴욕 타임스〉
음담패설과 익살, 인간의 상스러움에 관한 극적인 파노라마.
우리는 이 ‘초현실’적인 작품으로 중국의 현실을 볼 수 있다. ? 〈워싱턴 포스트〉
드물게 날카롭고 좀더 야만적인 현대 중국의 초상 ?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