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고 서울의 거리를 헤매다니던 나는 넌덜머리가 나던 도회지의 곁방살이를 단념하고 시골로 내려왔다. 시골로 왔대야 내 앞으로 밭 한 뙈기나마 있는 것도 아니요 겨우 논마지기나 하는 삼촌의 집에 다시 밥벌이를 잡을 때까지 임시로 덧붙이기 노릇을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 어린 아내와 두 살 먹은 아들놈 하나밖에는 딸린 사람이 없어서 식구는 단출하지만 한 푼의 수입도 없는 터에 뼈가 휘도록 농사를 지으시는 작은 아버지의 밥을 손끝 맺고 앉아서 받아먹자니 비록 보리곱삶이나마 목구멍에 넘어가지를 않을 때가 많았다.
아무리 호미 자루 한 번 쥐어보지 못한 책상물림이기로 번들번들 놀고만 있기는 너무나 염치가 없어서 괭이를 들고 밭으로 내려가서 덥적거리면 삼촌은
“누가 너더러 일을 해달라니? 어서 들어가 글이나 읽어라”
하시면서 사랑방으로 들여쫓듯 하신다. 어떤 때는 책상 속에서 좀이 먹은 논어와 시전 같은 길길을 꺼내 놓고 꿇어앉아서 읽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