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멀리 있지 않다.
고등학생 이수가 꿈꾸는 이데아, 잎이의 세상.
솔직하게 털어놓겠다. 이 희곡에는 철학과 수학이 범벅되어있다. 이 소리에 뒷걸음질을 칠 청소년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길 바란다. 이 희곡은 철학자의 이름, 철학자의 사상, 수학 공식 따위 외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눈으로, 입으로 따라서 읽기만 하면 된다. 이곳에 진짜 철학과 수학이 담겨있다. 웬만한 철학 책보다 얇은 두께의 희곡으로 깊은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에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책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철학을 삶에 스며들게 하는 것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희곡은 대사를 말하고, 손짓과 발짓으로 연기를 하면서 고민하게 만든다. 『함수의 값: 잎이와 EP 사이』는 작품을 읽는 독자들을 그 세계로 던져놓음으로써 도저히 선택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든다.
희곡과 소설의 차이점은 ‘선택’에 있다. 두 장르 모두 독서를 통해 간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같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감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은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을 공감할 순 있어도 독자가 개입할 수는 없다. 이미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이므로 독자는 천천히 그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희곡은 독자가 어떤 억양으로 읽느냐에 따라 감정선이 완전히 달라진다. ‘안녕’이라는 두 글자 인사에도 천차만별의 이야기가 담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희곡도 작가가 만들어놓은 작품이므로 서사가 완전히 바뀔 수 없겠지만, 보다 적극적인 독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 백승연은 이전에 어린이를 위한 희곡 『한눈팔기 대장, 지우』를 선보인 바 있다. 어린이 및 청소년을 위한 희곡이 드문 가운데, 꾸준히 아이들을 위한 희곡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행보가 반가울 따름이다. 새로이 선보이는 청소년 희곡 『함수의 값: 잎이와 EP 사이』는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수가 추구하는 이상이 현실에 부딪히면서 깨어지고 변형되는 모습을 다루었다. 청소년이기에 말하기 어려웠던 부분부터 한 청소년이 꿈꾸는 이데아까지 이곳에 모두 담겨있다. 『함수의 값: 잎이와 EP 사이』를 읽는 성인 독자들이라면 가볍게 지나쳤던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청소년 독자들이라면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