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지고 이지러진 달이 떠올랐다.
"저는 그만 가겠어요."
영애는 일어날 마음도 없으면서 종호의 넙적한 손에 갇혀 있던 손을 슬며시 빼내며 한 손으로는 눈을 비볐다.
"지금 당장에 가지 않더라도 갈 사람이 아니오. 이 밤이 마지막 밤이고, 내일부터는 남남이 될 줄 알면서도 그 정이란 것이 우스운 것이라서 당신을 놓기가 싫구려. 그래요, 가야지요. 약혼까지 한 여인이 밤이 늦도록 다른 사나이와 손을 맞잡고 있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이요? 더 늦기 전에 어서 가시지요."
종호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다가 완강한 팔로 영애를 제 가슴에 품어 안고야 말았다.
"왜 그렇게 빈정대세요. 그만큼 말했으면 이해해 주시리라 믿었는데 그러시면 제 가슴만 더 답답할 뿐이에요. 그래요, 얼마든지 빈정대세요. 그래도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도 당신이 굽히지 않으시면 저더러 죽으라는 말씀이세요? 죽으라시면 죽지요. 네, 죽으라고 명령하세요.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