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세월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이데올로기에 의해 가위질을 당하였던 〈인간문제〉를 비롯하여, 식민지 현실 속에서의 저주스런 궁핍성을 고발한 강경애의 작품들을 만난다.
- 식민지 시대에 대한 역사해석에서 소외된 대중의 근대성, 일상성, 그리고 공간성이 작가 강경애의 성실한 관찰과 묘사로 소설화되어 현대인들에게 전해진다.
● 관념을 앞세우기보다 자신의 절실했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에 고심하고 분투했던 작가 강경애의 삶과 내면 그리고 그녀가 글로 남기고자 했던 당대의 현실을 읽어나간다.
1906년 황해도 송화군 송화에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난 강경애의 삶은 이렇듯 처음부터 가난과 궁핍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미 소학교 시절에 월사금과 학용품 구입비용 때문에 도둑질까지 생각해야 했던 그녀는 1921년에 형부의 도움으로 평양 숭의여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이 시절에 만나서 동거까지 했던 양주동과도 ‘가난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어서 헤어져야 했었을 정도로 가난과 궁핍은 그녀를 계속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녀는 이 와중에도 처음에는 동거자인 양주동에게서 그리고 다음에는 남편인 장하일에게서 작가수업을 비롯한 많은 가르침을 받아내며 작가로 성장해나간다. 또한 남편을 통해 사회주의와 접촉하면서 그녀는 현실극복의 논리로서 사회주의적 비전을 수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이데올로기에 빠지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녀에게 있어서 이미 관념적인 이데올로기보다 더 높은 강도를 지닌 ‘절실한 현실체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체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소설 쓰기란 있을 수 없지만, 그녀의 체험은 다른 작가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강도를 지닌 것이었다. 이렇듯 강렬한 체험은 그녀의 문학을 규정하고 창작기법을 만들어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소설에서 궁핍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최서해나 이기영 그리고 조명희 등의 작품들의 내용과 비교할 적에도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이다. 강경애의 궁핍묘사는 곧 작가의 세계관과 사상적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는 초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궁핍묘사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데, 그러한 묘사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먹는’ 묘사라 하겠다.
그녀의 궁핍묘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먹는’ 묘사, 즉 미각에 대한 묘사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의 다른 감각에 대한 묘사는 유독 탁월한 기법을 보인 것과 명백하게 구별된다. 왜냐하면, 그녀가 살던 시대는 ‘미각이 문제가 아닌 시대’, ‘우선 공복을 채우는 것이 절박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은 이러한 시대적 절박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녀가 ‘궁핍 문제의 극복’을 소설의 방향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그녀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표방했던 여타의 작가들과 달리 자신의 궁핍 체험을 묘사하는 식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냄으로서 ‘빈궁소설’에 성공한 작가라 평가된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글, 그중 특히 그녀의 대표작 〈인간문제〉는 해방 후 남한과 북한에서 이데올로기적 필요성에 의해 1943년에 이미 사망한 작가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문장이 고쳐져 그 의미가 달라지고, 심지어 줄거리까지 변화되어야 했다. 이에 서정자 교수(초당대)가 판본 비교를 통해 작가 강경애의 ‘자신의 체험을 기술하는 글쓰기 방식’을 확인한 다음, 그러한 기법이 그대로 나타난 1930년대 《동아일보》의 연재본을 정본으로 하여 이렇듯 다시 소개하게 되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