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李瀷, 1681~1763)은, 자는 자신(子新), 호는 성호(星湖)이다. 1681년(숙종 7)에 태어나서, 1763년(영조 39)에 죽었다.
성호는 당대를 대표하는 석학이다. 그런데 그의 지적 수준이라는 것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소 알량하다.
예컨대, 성호사설에서 드러나는 성호의 학문적 성향은, 과학적 관심이 지대하다. 그런데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던 탓에, 전혀 엉뚱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성호사설을 분석해보면, 현대사회처럼 지식과 정보가 차고 넘치는 시절이 아닌 탓으로, 오히려 고독하고 심오하게 고뇌하며 궁구한 흔적을 여실히 살필 수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사유가 깊어지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많은 것을 알지만 얕고, 과거인들은 적은 것을 알지만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고전을 공부하는 까닭 중 하나이다.
1. ‘성호 이익의 잡다한 논설(星湖僿說)’ 서문
자서(自序)
성호사설(星湖僿說)은 성호옹(星湖翁)의 희필(戱筆)이다. 옹이 이를 지은 것은 무슨 뜻에서였을까? 별다른 뜻은 없다.
뜻이 없었다면, 왜 이것이 생겼을까? 옹은 한가로운 사람이다. 독서의 여가를 틈타, 전기(傳記)ㆍ자집(子集)ㆍ시가(詩家)ㆍ회해(詼諧)나, 혹은 웃고 즐길 만하여, 두고 열람할 수 있는 것을, 붓 가는 대로 적었더니, 많이 쌓이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 비망(備忘)을 위해서, 권책에 기록하게 되었는데, 뒤에 제목별 그대로 배열하고 보니, 또한 두루 열람할 수 없어, 다시 문별로 분류하여, 드디어 권질(卷帙)을 만들었다.
이에 이름이 없을 수 없어, 그 이름을 사설이라 붙인 것인데, 이는 마지못해서 이지, 여기에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옹은 20년 동안 경서를 연구하면서, 성현들의 남긴 뜻을 보고, 이해한 대로 거기에 대해, 각각 설(說)을 만들었다.
또 저술을 즐겨, 때에 따라 읊고 수답한 것, 그리고 서(序)ㆍ기(記)ㆍ논(論)ㆍ설(說)을 별도로 채집하였으되, 사설 따위는, 차마 이 몇 가지 조항에 실리지 못할 것인즉, 쓸데없는 용잡한 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속담에 “내가 먹기는 싫어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그 말이, 이 「사설」이 생긴 이유이다.
무릇 삼대(三代)가, 그 숭상함을 달리하여, 문(文)에 이르러 그쳤는데, 문의 말조(末造)란, 소인의 세쇄한 것들이다.
주(周) 나라 이후로, 그 문이 순수한 데로 되돌아가지 못한 것이, 이미 오래되었다.
하민(下民)의 덕이란, 그 폐단이 더욱 심해지게 마련이라, 우리 같은 소인배가, 세속과 함께 흘러 움쩍하면, 말이 많아지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극히 천한 분양초개(糞壤草芥)라도, 분양은 밭에 거름하면, 아름다운 곡식을 기를 수 있고, 초개는 아궁이에 때면, 아름다운 반찬을 만들 수 있다. 이 글을 잘 보고 채택한다면, 어찌 백에 하나라도 쓸 만한 것이 없겠는가?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