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풀 한 포기 번번이 남아있지 않고 거칠 대로 거칠어진 언덕에 초라한 옛 무덤이 무인연이 없는 분묘(墳墓)처럼 스산하게 놓여있을 뿐이다. 내가 처음으로 육신묘를 찾기는 지금으로부터 바로 6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듬성듬성하게나마 몇 그루 소나무 서있고 무심한 아이들의 장난터가 되었을망정 오늘날처럼 봉분 바로 옆에까지 구덩이를 파고 밭을 일구고 하지는 않았었다.
그때 나는 청년학도로서 비분(悲憤)한 생각을 누를 길이 없이 동아일보 지상에 ‘그 거룩한 곳을 수호 숭봉(崇奉)함으로 해서 우리들이 무너져가는 마음의 성을 다 함께 지켜나가라’고 외쳤다.〈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