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詩作)은 인간의 사상과 정서가 어떤 현상을 만나 비빔밥처럼 버무려져 화학반응의 결과인 양 제 3의 영역을 얻고자 행하는 창조적 활동으로 글을 압축·운율·함축적으로 표현해 내는 언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 관점에서 시 세계는 아름다운 대상일 것이나 일련의 과정을 밟아보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글쟁이라면 숙명이나 운명처럼 가고 또 가고, 넘고 또 넘어야 하는 문학이라는 첩첩준령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엔 『이 가슴에도 물이 오른다』는 태산준령을 넘어왔다.
이번 둘째 준령을 종주하는 동안은 내 사랑하는 가족(李收鎭. 智喚 瑞允)의 배려 속에 시의 소재들을 조우해 와서일까?
집시랑물 떨어지듯 한 달여 간격으로 언어 예술의 창조적 산물을 얻게 되었으니 뉘 아니 기쁘겠는가!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Eliot,thomas Stearns는 '시에 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다'고 피력한 바가 있다. 이에 발문(跋文)은 웅숭깊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그러나 삶의 진실에 기반을 둔 사상만큼은 잘 키워내 장미향처럼 느낄 수 있도록 '묵힘의 미학' 실현을 지향할 것이다.
끝으로 유구일인지지(唯求一人之知)하는 기쁜 마음으로 제2시집 『생태계의 속내』를 상재함에 있어 나를 알고 있는 지기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제, 셋째 준령에 오를 채비를 차려야겠다.
― 허용회, 책머리글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