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번의 중국역사소설 남북사통속연의 76회-80회 16 한문 원문 및 한글번역
예시문
却說周主邕親政以後, 進太傅尉遲回爲太師, 柱國竇熾爲太傅, 大司空李穆爲太保, 齊公憲爲大?宰, 衛公直爲大司徒, 趙公招(宇文泰第七子。) 爲大司空, 柱國辛威爲大司寇, 綏德公陸通爲大司馬。
각설주주옹친정이후 진태부위지회위태사 주국두치위태부 대사공이목위태보 제공헌위대총재 위공직위대사도 조공초 우문태제칠자 위대사공 주국신위위대사구 수덕공육통위대사마
각설하고 주나라 군주 우문옹이 친정한 이후에 태부 위지회를 태사로 주국 두치를 태부로 대사공 이목을 태보로 제공 우문헌을 대총재로 위공 우문직을 대사도로 조공 우문초(우문태의 7번째 자식)을 대사공으로 주국 신위를 대사구로 수덕공 육통을 대사마로 승진시켰다.
此外如宇文神擧、宇文孝伯及王軌等, 亦皆進秩有差。
차외여우문신거 우문효백급왕궤등 역개진질유차
이 밖에 우문신거, 우문효백과 왕궤등도 또 모두 작위 승진에 차등이 있었다.
又因庾季才一再諫護, 特賜粟帛, 升授大中大夫。
우인유계재일재간호 특사속백 승수대중대부
또 유계재가 한 두 번 간언으로 보호해 특별히 좁쌀과 비단을 하사하여 대중대부로 승진시켰다.
當時老成宿將, 如燕公于謹, 鄭公達奚武, 隋公楊忠等, ?皆去世。
당시노성숙장 여연공우근 정공달해무 수공양충등 병개거세
연공 우근, 정공 달해무, 수공 양충등과 같은 당시 노련한 노장이 모두 별세했다.
忠子名堅, 曾爲小宮伯, 宇文護見堅非常相, 屢欲引爲腹心。
충자명견 증위소궁백 우문호견견비상상 루욕인위복심
양충 아들의 이름은 양견인데 일찍이 소궁백으로 우문호는 양견이 보통이 아닌 관상임을 보고 자주 끌어들여 심복으로 삼았다.
忠密囑道:“兩姑之間難爲婦, 汝寧勿往!”
충밀촉도 양고지간난위부 여녕물왕
양충이 비밀리에 부탁했다. “두 시어미 사이에 있으면 며느리되기 어려우니 너는 차라리 가지 말라!”
堅謹遵父訓, 故護伏法受誅, 堅得不坐。
견근준부훈 고호복법수주 견득부좌
양견은 삼가 부친의 교훈을 따라 우문호가 법대로 죽임을 당할 때 양견은 연좌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