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현대사
1. 다이쇼 데모크라시(大正デモクラシー, 1911~1925)
‘중공(中共) 무한(武漢) 폐렴(肺炎)’이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大流行)하는 시국(時局)에, 수도권(首都圈)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하여, 38명이 사망했다.
이러하니 인간존재의 목숨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허망(虛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인생(人生)의 흔적은, 기껏해야 자손(子孫)을 통해서 남겨지거나, 역사(歷史)를 통해 기록될 따름이다.
하루하루 악착같이 살아내지만, 결국은 먼지 한 줌도 남지 않는 인생인 것이다.
그러니 수천 년 인류사(人類史)를 지내면서, 21세기 첨단(尖端)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면서도, 제 목숨 하나에 죄다 얽매이는 삶일 뿐이다.
더욱이 이런저런 역사를 살피다보면, 이런 허망함은 더욱 커진다.
이씨조선(李氏朝鮮)의 종말(終末)을 위시(爲始)하는,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는 물론이며, 세계사(世界史)를 주도하는 미합중국(美合衆國)의 역사를 살피는 동안, 참으로 치열하게 자기의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시나브로 경의(敬意)를 표하게 된다.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인생을 살아낸다는 일, 그것은 인간존재로서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는 행위이다. 자기의 목숨을 담보 삼는 것 이상의 도전(挑戰)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존재는, 자기 목숨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저 목숨이 자연스레 다할 수 있기만을 바라며, 목숨의 연명(延命)에 끌려 다닌다.
그런데 자연사(自然死)로써, 어느 정도 체념(諦念)하는 인생은, 그나마 ‘개돼지 군중(群衆)’ 노릇은 하지 않는다.
현실세계(現實世界)에서 ‘개돼지 군중’ 노릇을 하는 자들의 양태(樣態)는, 대체로 목숨에 매달리며,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생존해보려는 욕망(欲望)의 작태(作態)를 벗어나지 못한다.
요사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부산시장(釜山市長)이라는 직위(職位)의 위력(威力)으로써,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性醜行)했다는 ‘오거돈’이라는 자는, 어쩌면 차라리 솔직한 욕망하는 동물(動物) 그 자체로서,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했는지 모른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