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 이씨조선 역사
세종대왕 성삼문 신숙주 황희정승
1. 세종(世宗, 1397~1450),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북한(北韓)의 백두혈통(白頭血統) 신격화(神格化)나 우상화(偶像化)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런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라는 국명(國名)에서 알 수 있듯, 북한은 이씨조선(李氏朝鮮)의 정권(政權) 유지 형식을 다소 모방하고 있다.
예컨대, 조선왕조(朝鮮王朝) 초기, 신권(臣權)의 유지(維持) 존속(存續)을 목적하며, 신격화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청백리(淸白吏) 황희(黃喜) 정승(政丞)이다.
그의 삶의 행태(行態)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전설적인 위대한 인물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고 그런, 양반사대부(兩班士大夫)로서의 고위 공무원 생활이었다. 단지 시대와 상황 안에서, 시류(時流)에 잘 편승(便乘)하였을 따름이다.
그러한 것을, 후대(後代)에 여러 이유로,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써 미화되고 신격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에, 영웅(英雄)이나 의인(義人)이 요구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한 캐릭터들이 없다면, 애당초 역사(歷史)라는 것이 정립되지도 않을 것이다.
민중사관(民衆史觀)쯤을 운운하며, 민중(民衆) 중심의 역사를 인식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실상 한갓 민초(民草)의 허접한 삶에 관심을 갖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적어도 자기보다 잘 살고, 잘 나고, 능력 있는 자를 선망(羨望)하는 것은, 인간존재(人間存在)의 본성(本性)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성역화(聖域化)하여, 검증(檢證) 자체가 불가(不可)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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