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창시자, 최제우 선생의 죽음 이야기!
김씨는 까치 소리를 들으며 저녁이 된 것을 알고 기도하며 저녁을 준비합니다.
남편 박 대여가 들어오면서 동학선생님이 이곳에 오신다고 말합니다.
부부는 선생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선생님 맞을 준비를 합니다.
청소도 하고 먹을 것도 준비하고 주무실 방도 따뜻하게 준비하고...
부부는 함께 동학선생님의 안위를 위해 기도도 올립니다.
과연 동학선생님은 이 부부의 소망처럼 이 집에서 편히 쉬실 수 있을까요?
모든 준비는 끝났고, 이제 동학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립니다.
우리도 동학선생님을 만나 봬야겠습니다.
〈동학에 관한 이해〉
조선후기 인내천의 교리를 중심으로 한 동학을 창도한 종교창시자, 최제우.
그는 세상인심의 각박함과 어지러움이 바로 천명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것을 깨닫고 천명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1860년 4월 5일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그의 종교적 신념은 결정적으로 확립되기 시작하여 1년 동안 그 가르침에 마땅한 이치를 체득하고 도를 닦는 순서와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1861년 포교를 시작하였고, 곧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동학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어 동학이 세력을 얻게 되자 기존 유림층에서는 비난의 소리가 높아져 서학, 즉 천주교를 신봉한다는 지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1862년 3월 경주로 되돌아갈 때까지의 남원의 은적암(隱寂庵) 피신생활 중 동학사상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였고, 「논학문(論學文)」·「안심가(安心歌)」·「교훈가」·「도수사(道修詞)」 등을 지었습니다.
신도가 더욱 증가하였으며, 포교방법의 신중성을 가져와 마음을 닦는 데 힘쓰지 않고 오직 이적만 추구하는 것을 신도들에게 경계하도록 하였습니다.
경상도·전라도뿐만 아니라 충청도와 경기도에까지 교세가 확대되어 1863년에는 교인 3,000여 명, 접소 13개소를 확보하였습니다.
이 해 7월 제자 최시형(崔時亨)을 북접주인으로 정하고 해월(海月)이라는 도호를 내린 뒤 8월 14일 도통을 전수하여 제2대 교주로 삼았습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미 동학의 교세확장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의 체포계책을 세우고 있었는데, 11월 20일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에 의하여 제자 20여 명과 함께 경주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 철종이 죽자 1864년 1월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었고, 이곳에서 심문받다가 3월 10일 사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41세의 나이로 참형에 처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