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문학여행(人文學旅行)의 종착지(終着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았던, 인문학여행(人文學旅行)의 마지막 종착지(終着地)는, 허무적멸(虛無寂滅)이다.
먼저 이 길을 걸었던 대부분의 인문학여행자(人文學旅行者)들은, 이미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필자(筆者) 역시, 그들이 전해준 메시지를 통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아직 여행길에 있는 인간존재(人間存在)들로서는, 당최 인식(認識)할 수 없고, 시인(是認)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노자(老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고독(孤獨)한 아나키스트의 목적지(目的地)이며 종착지이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도 고독한 길이다. 고독하지 않다면, 설령 아나키스트일지라도 체험할 수 없다.
‘모더니즘’의 보편(普遍)과 합리(合理)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해체(解體)되었다.
‘모더니즘’ 보편과 합리의 주체(主體)가, ‘이익(利益)과 전쟁(戰爭)’에 의해 작동하는 ‘도구적(道具的) 이성(理性)으로서 권력(權力)’이었던 탓이다.
현실세계(現實世界)가 죄다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무런 대안(代案)도 제시하지 않는다. 애당초 ‘혁명적(革命的) 해체(解體)’만을 목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안에서, 온갖 해체 이후 찾아드는 것은, 응당 또 다른 ‘이익(利益)과 전쟁(戰爭)’이다. 그런 것이 인류사(人類史)의 작동원리다.
‘생성(生成)과 해체(解體)의 되돎’은, 역사의 본원적(本源的)인 작동원리다. 생성의 시기가 지나면, 해체의 시기다 도래한다. 이는, 자연스런 법칙이며 현상이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