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노비 관련 기사
태조실록 정종실록 태종실록
21세기에 이르러,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체제를 수용(受容)하는 국가에서는, 대체로 훈육(訓育)과 세뇌(洗腦)에 의해, 고대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民主主義)에 대한, 괴이(怪異)한 선망(羨望)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실상(實狀)은, 그다지 민주적(民主的)이지 않았다. 그 민주(民主)의 대상(對象)으로서, 자격(資格)을 가진 자는, 자유인(自由人)으로서 시민(市民)에 한정(限定)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민(市民)은, 이씨조선(李氏朝鮮)의 상황으로 비견(比肩)한다면, 양반사대부(兩班士大夫)이거나, 적어도 돈 많은 중인(中人) 이상의 계층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생계(生計)를 유지했는가. 그들은 다수(多數)의 노예(奴隸)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搾取)하여, 민주(民主) 시민(市民)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았다.
이러한 구조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이 별다르지 않다. 조선왕조(朝鮮王朝) 역시, 대다수(大多數)의 노비(奴婢)들의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양반사대부들은 성리학자(性理學者)로서 학문에 매진(邁進)하여, 고도의 지식을 향유(享有)하며, 기득권(旣得權) 세력의 위세(威勢)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형식의 착취(搾取)야말로, 인간(人間)의 인간(人間)에 대한 착취이다. 실로 고혈(膏血)을 뽑아내는 착취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한다면, ‘마르크스’가 논변(論辨)하는, 노동자(勞動者)에 대한 자본가(資本家)의 착취는,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고 할 것이다.
현대사회가 다소 나아졌다지만, ‘금수저’ 계층이 지니는 특권적(特權的) 기득권(旣得權)을, 언감생심(焉敢生心) 서민대중(庶民大衆)으로서 넘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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