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을 축성하고 외적과 몇 번의 교전이 있었을까? 결론은 평화로운 세상만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성은 사람의 입김과 자연의 힘에 조금씩 무너졌고, 다시 쌓았다.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조의 야심 찬 계획의 결과물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이다.
두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가슴에 담으며 한 바퀴 돌다. 성벽이 있고 시설물이 있다. 큰 돌과 작은 돌을 최대한 사용하여 만리장성보다 정교하게 마무리를 하였다. 우리 선조들의 돌을 다룬 솜씨를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면과 면을 맞추어 일정하게 축성할 수 있다는 것은 조선의 정신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연무대의 외사문을 들어서는 순간 성곽을 둘러보는 첫발이 된다. 협문을 나서면 우뚝 솟아 있는 동북공심돈에 성곽의 장엄함을 느끼고, 동북노대를 오르며 성벽의 짜임을 읽을 수 있고, 창룡문을 나서니 옹성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불과 연기를 피워 적의 동태를 파악하던 봉돈의 횃불은 꺼졌지만 통신의 발전상을 간직하고 있다. 포루, 치성, 각루 등은 병사들의 활약상을 그릴 수 있고, 팔달문에 이르러 웅장한 성문이 역사 속으로 날아갈 듯 기상을 펴고 있다.
팔달산을 따라 적의 동태를 파악하던 서장대는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핀다. 화서문의 둥글게 쌓은 옹성, 서북공심돈의 기상은 화성의 위용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포루와 화홍문을 연결하여 물을 흘려보내고, 용연은 각루와 수양 버드나무의 달그림자를 담는다. 성벽은 굽이굽이 지형에 따라 오르고 내리고 한 발씩 내딛으면서 다시 연무에 이르니 성곽 축성의 미학을 오롯이 담을 수 있다.
기존의 목재와 석재 사용에서 벗어나 벽돌을 도입하면서 화성의 건축물은 전통의 기술을 한층 더 개선하여 만들어졌다. 늘 보아도 부족하지만 보고 느낀 만큼 다듬어 '축성의 미학 수원화성을 걷다'라는 제목으로 엮어 보았다.
세계문화유산 체험과 함께 정조가 꿈꾸던 새로운 혁신과 역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