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주(鄭夢周) 포은집(圃隱集)
왕씨고려(王氏高麗) 마지막 성리학자(性理學者)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정몽주(鄭夢周, 1337~1392)는, 원(元, 1271~1368)나라가 망하고, 명(明, 1368~1644)나라가 새로이 패권국(覇權國)으로 등장하는 시절을 살아냈다.
국제정세(國際情勢)에 밝은 외교가(外交家)였던 정몽주는, 응당(應當) 새로이 부상(浮上)하는 친명파(親明派)에 속했다.
역대(歷代)로 국제정치(國際政治)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요충지(要衝地)인 한반도(韓半島)에 건국(建國)한 국가(國家)들은, 국제정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왕씨고려(王氏高麗) 정몽주(鄭夢周)의 시대에는, 원나라와 명나라가 패권경쟁(覇權競爭)을 하였다. 그런 국제정치(國際政治)의 영향 탓에, 국내정치(國內政治)는 친원파(親元派)와 친명파(親明派)가 첨예(尖銳)하게 대척(對蹠)하였다.
이후 이씨조선(李氏朝鮮)에서도 유사한 국제정치적 상황이 되풀이된다. 명(明, 1368~1644)나라와 청(淸, 1616~1912)나라의 패권경쟁(覇權競爭)이 발생한 것이다. 이 시절에도 친명파(親明派)와 친청파(親淸派)는 여실히 대립했다.
이씨조선(李氏朝鮮)이 멸망(滅亡)할 즈음, 세계(世界)는 이미 글로벌한 지구(地球) 공동체(共同體)를 경영하는 시대였다.
아편전쟁(阿片戰爭)으로써, 동양문명(東洋文明)과 서양문명(西洋文明)의 승패(勝敗)는 결정되었다. 서양문명의 완벽한 승리(勝利)였다.
21세기에도 패권경쟁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서양문명을 대표하는 미국(美國)과 동양문명을 대표하는 중국(中國)의 패권경쟁이다.
이러한 국제정치의 영향으로, 국내정치에서 친미파(親美派)와 친중파(親中派)의 대립은 작동(作動)한다.
왕씨고려(王氏高麗)에서 친원파(親元派)와 친명파(親明派)의 대립, 이씨조선(李氏朝鮮)에서 친명파(親明派)와 친청파(親淸派)의 대립, 대한민국(大韓民國)에 친중파(親中派)와 친미파(親美派)의 대립, 이런 유사한 상황의 되풀이가 곧 역사(歷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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