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다는 것은 공부한다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이다. 배우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자세가 매우 능동적으로, 일상의 지식이나 경험과는 다른 사실을 보려고 한다. 즉 보편 타당한 진리보다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한 남다른 시각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갖추어진 사람은 없겠지만 누구나 하는 공부에서 한 단계 높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하겠다. 관찰의 깊이와 폭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보편 타당한 지식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목표를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목표가 설정되면 선지자의 경험 또는 책이나 강연 등을 통해 배우는데, 그럼 언제까지 배워야 목표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을까?
무작정 배우기만 한다면 한 발짝도 못나가고 그 자리에 정체될 수도 있다. 자칫 배움에 짓눌리다 보면 결국 억지로 공부하는 행위로 다시 돌아가기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비자발적이고 타의적인 행위로 복귀될 가능성이 크고, 목표에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며 정체될 수 있다.
그래서 배움을 한 단계 높여, 배우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배움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순한 정리가 아니고 배움을 자기화 한 것으로 정리를 넘어선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움을 통해 스스로 찾은 사실이나 새로운 생각을 점검하는 수단이 표현이다. 자기화한 배움의 표현이 다수가 알 수 있도록 공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도 이해할 정도 되면 배움의 방향이 바르게 설정되었다는 것이고, 공유하는 과정에 새로운 생각을 추가할 수도 있다. 반면 자신의 표현이 불특정 다수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면 자신이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해할 수 있는 정확한 표현을 찾든지 아니면 목표를 수정하여 더 배워야 한다. 다양한 표현 방법이 있겠으나, 글쓰기나 책을 출판하는 것은 강력한 표현 수단이다.
누구나 글은 쓸 수 있겠지만 자신이 습득한 배움을 불특정 다수가 이해할 정도의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새로운 관점에서 표현한다는 것은 이제껏 쓰여진 단어도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하는 행위다.
일상에서 생각을 바꾸고 새로운 관점의 목표를 배우면 결국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창조해 낼 수 있다. 비록 작은 생각이지만 창조자들이 모여서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