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시심의 원천을 지니고 살다 보면 스치는 인연에 대한 마음의 파장이 이채롭다. 본능적 감성의 온도가 상대에 따라 여러 부류가 있을 때 그래도 내게 강하던지 약한 면이 나누어질 수 있다. 사회적 가치 기준으로 명예라든가 재력이라던가 인격이 수승한 선지식일 경우에 거의 평온을 유지하지만, 유난히 약하게 내가 허물어지는 것은 측은지심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보랏빛 연민이 피어나는 트바로티에 대한 팬심에서 모성 같은 무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나를 본다. 무조건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하는 마음이 새겨진다.
선천적으로 오지랖이 넓다는 것을 자각하고도 상처를 받는 경우를 당하고 그러지 말자고 해도 고쳐지지 못하는 나만의 아킬레스건 같은 것이 바로 연민이 일어나는 경우를 자각하게 되었다. 연민의 감성이 마음에 싹이 트면 그냥 내버려 두려고 해도 자라나서 보이지 않는 힘을 행사하면 어느 때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으로 다가오면서 결국은 연민 앓이로 앓게 된다. 사람은 대부분 이기적이고 본능적으로 적절한 이기심의 영토가 구축되어있다. 그러구러 가장 소중한 시간이 낭비되고 허망한 마음의 굴곡이 나를 무참하게도 한다. 어찌 모두 내 마음과 같으랴만 나만의 선택은 결국 부메랑의 법칙에 따른다.
마음이 언어의 탈출구로 쏟아지는 순간 글쓰기는 연민의 슬픈 강줄기처럼 감성을 두드리면서 이야기를 생성한다. 그것이 묶어지면서 때로는 시의 형태로 수필로 소설로 포장되어 남게 된다. 연민은 살아있는 생명의 파동이라 어떤 감성이 뿌리가 깊게 뻗으면서 좋던지 나쁜 인연의 과보가 남는다. 사회생활에서 그 직능의 작업과 인간관계는 반씩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는데 살아 보니 사람과의 관계는 평상시의 온도가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그러나 평상심을 지니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나만의 감성은 아직도 늙지 않고 아마도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의 교훈을 알고 있지만, 수행에 게으르면서 가끔은 잊고 산다. 내 치명적 감성의 연민이 나를 아프게 하는 몸살의 미열을 해열시키려는 마음 자락을 노래하는 시심을 여기 묶으며 동병상련의 독자에게 치유의 에너지가 되기를 희망한다.
―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