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金剛經)
jīn gāng bō rě bō luō mì jīng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인문학여행(人文學旅行)의 과정(過程)에서, 마땅한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은, 필자(筆者)의 업장(業障) 탓이리라.
불가(佛家)에서는 스승의 중요성(重要性)을 특히 강조(强調)하는데, 애석(哀惜)하게도 지금(只今)에 이르도록 필자(筆者)는 마땅한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어린 시절부터 현재(現在)에 이르도록, 늘 좌충우돌(左衝右突)하며 우왕좌왕(右往左往)하기 일쑤다.
필자(筆者)에게 지은 복덕(福德)이 있어서 참된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부처님에게도 마땅한 스승은 없었으며,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갖은 만남 가운데서, 결국(結局) 스스로 깨달았음을 위안(慰安) 삼아본다.
현실세계(現實世界)에는 다양(多樣)한 삶의 행태(行態)가 있다. 그런 무수(無數)한 양태(樣態) 중에서, 가장 인간존재(人間存在) 자체(自體)에 근접(近接)하려는 삶의 모습은 승려(僧侶)다.
승려(僧侶)의 삶은 철저(徹底)한 수행자(修行者)의 여정(旅程)이다. 그 목적지(目的地)은 해탈(解脫)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에 이르는 것이지만, 역사(歷史) 속 숱한 승려(僧侶)들 중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했다고 가름되는 이는 많지 않다.
설령(設令) 승려(僧侶)로서 살아내더라도 인생(人生)의 생노병사(生老病死)를 해결(解決)하기는 어렵다는 방증(傍證)이다.
필자(筆者)는 인문학여행자(人文學旅行者)로서 삶을 살아내고 있다. 무신론자(無神論者)인 탓에 특정(特定)한 종교(宗敎)를 신앙(信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各) 종교(宗敎) 수도자(修道者)들의 삶이야말로 참으로 인간(人間)다운 삶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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