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영원불변일 줄 알았는데 사실 검색을 해보니 사라지기도 하고 옮겨가는 과정에 약간의 에러도 생기고 덧붙이기 함을 인식하게 되어 이런 에러가 발생하기 전(이미 발생한 에러는 할 수 없이 그냥 놔두고)에 ‘신문 인터넷 에세이 칼럼’을 정리하고 있다.
특히 문필봉에 나타난 추사 김정희에 관한 이야기는 눈여겨볼 만한 아주 특별한 기사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헌종 6년(1840년) 제주에 유배되어 헌종 14년(1848년)까지 지내는 동안 곽지리에도 수차례 드나들며 유생들을 배출했는데 그중 계참 박규안(朴奎安)을 만나게 되어 그를 수제자로 삼았다 한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선생은 귀양살이가 끝나 서울로 올라갈 때 박규안을 데리고 올라갔다 한다. 서울에 올라간 박규안은 김정희의 문장과 너무 흡사하여 누가 누구의 글인지 분간할 수 없이 필체가 똑같으매 과거시험에 응시한 결과 장원 급제하였다. 과거 시험장에서 시험관들은 모두 추사 선생이 쓴 글인 줄 알고 심사를 하는 데 시간이 걸릴 만큼 워낙 뛰어난 솜씨였다 한다. 이를 시기한 한양의 선비들의 계략에 박규안은 죽고말고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김정희는 친필로 ‘남극사인’이라 써서 유골과 함께 마을로 보냈다고 전해 온다.
표지는 과거시험 재현을 4회 정도 했는데 필자는 3회까지 주 진행 및 심의를 했다. 그때 장원 급제한 원생이 암행어사 복장을 하고 손사래 말을 탄 모습으로 당시 대단한 인기몰이했던 프로그램이다. 진행지(곳)이 바로 예전에 향시를 치렀던 관덕정으로 자료는 역사적 사실은 최대한 원안 그대로 기록 차원에서 정리했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