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의 눈에 포착된 우리의 지난 삶의 기록들
문학을 ‘인간학’에 비유했던 고리끼처럼, 소설가 김별아는 ‘소설의 풍미는 삶의 진창에 코를 박고 짓무른 상처에 뺨을 비빌 때 발현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는 체질상 더욱 예리하고 예민하게 삶을, 사회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소설가 김별아는 언제 어디서고 사람과 삶을 본다. 선배와 밥을 먹으면서, 먹는 일은 본능을 넘어선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대충 사먹는 일에 익숙한 우리의 삶을 본다. 시위 중인 재향군인들의 군모 바깥으로 삐져나온 백발의 구레나룻을 보며, 군복을 벗으면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마는 노년의 존재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가끔씩 얼굴을 맞대는 지인들의 삶에서도 하나하나 생의 이치들을 그러모은다. 그리고 생애전환기 마흔을 넘어가며 자신의 삶에 대해 조금은 느긋해진 마음과 오롯이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독자들에게 넌지시 건네준다.
잡설, 독설, 객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무슨 말을 할까를 고민하기보다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할까를 고민했다. 내 깜냥이 닿는 한도에서 정직하게, 폼 잡지 않고 할 수 있는 말만 하려 애썼다. 언제까지고 성실한 학생으로 사는 것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소원인 바, 세상을 휘돌아보며 다만 내가 조금 먼저 배운 것을 공유하고자 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은 2009년 2월부터 최근까지 인기리에 연재했던 〈한겨레〉 칼럼을 비롯하여, 몇몇 신문들의 지면을 통해 발표했던 글들을 모았다. 각 부마다 일상, 사람, 아이, 우리 사회 이야기로 엮었다.
사람과 사람, 그 안에서 삶을 떠올리다
그녀 곁에는 사람이 많다.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두 살 터울 동생의 분신 이후 사회 곳곳 아픈 곳만을 돌아다니며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박래군, 가수가 되고 싶어 시골에서 올라와 억척같이 꿈을 이뤄낸 강허달림, ‘바로 지금을 즐겁고 행복하게, 어떻게든 앙버티며 열심히 사는 것이 이 난경에 처한 우리의 의무’라는 가르침을 주고 세상을 먼저 떠난 작가 김백리(본명 김은숙), 시인과 소설가들은 술을 먹는 게 투쟁이라며 시위 현장에 찾아온 김별아를 반갑게 맞이해준 시인 송경동……. 가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질 때면 자신의 삶으로, 온 몸으로 그 길을 보여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이들 외에도 김별아는 스치고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본다. 찬바람이 오가는 지하상가 층계참에 쭈그려 앉아 김밥을 먹고 있는 노숙인의 모습에서, 아파트 청소업체 아저씨의 팔뚝에 새겨진 ‘추억’이라는 글자에서, 평생을 맨몸뚱이로 바벨과 씨름하며 지루한 훈련을 이겨내는 역도선수들 앞에서 삶을 떠올린다.
매일 들어도 바벨은 무겁다. 하지만 들면 들수록 무게를 견딜 만큼 근육이 만들어지고 관절이 강화된다. 단에 오르면 봉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리하여 천근만근의 쇳덩이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때까지, 그들은 버틴다. 침묵과 집중 속에서 자신을 벼린다. 어쩌면 역도는 삶과 많이 닮은 운동 경기일지도 모른다.
어떤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라도, 아무러한 미미하고 하잘것없는 것이라도, 궁극으로 치닫노라면 마침내 빛나는 한 지점에 닿는다. 그것은 바로 삶, 그 자체! 한겨울에도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묵묵히 제 몫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역도 선수들의 응전을 보며, 욕심과 도전, 체념과 겸허의 좁다란 간극을 가늠해본다.
나는 무엇을 얼마나 들어 올리고, 무엇을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 〈삶을, 들어올리다〉 p.142-143
무엇보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가 갖는 존재의 크기는 대단하다. ‘한 생명의, 존재의, 삶의 무게가 오롯이 내 어깨에 얹히는 듯’한 양육의 시절이 지나고, 체력과 인내심과 자제력을 쌓게 만드는 사춘기 시절에 접어든 아이를 보며 나와는 다른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하나씩 깨달아간다. 또 아이를 바라보던 시선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로 넓혀진다. 어른들이 많든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숨통을 틔우기 위한 절규처럼 내뱉은 욕설, 어른들의 잔혹성을 빼닮은 왕따 사건들, 교실 붕괴와 냉소적인 아이들…… 김별아는 나쁜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세상이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있는 현실, 그것을 자초한 어른들의 책임을 따끔하게 묻는다.
상상할 수도, 상상하기도 싫었던 마흔을 넘어 살아가기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무리 지어 어울리는 것이 어려워 혼자였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혼자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이후 삶은 한결 가벼워졌다.
외로워서 그리운 게 아니라 그리워서 가만히 외로워져야 사랑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사랑하기보다는 지나친 포만감을 경계하며 그리움의 공복을 즐기는 편이 낫다. 무릇 성숙한 인간관계란 서로에게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내가 주고픈 만큼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깜냥껏 베풀면 그만이다. 그러니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가 없어도 서운하거나 불안치 않다. 진정한 믿음과 이해는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보고하지 않아도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통해 전달된다.
삶은 어차피 홀수이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그 사실에 새삼 놀라거나 쓸쓸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충만한 자유로움을 흠뻑 즐길 수 있다면, 홀로 있을지언정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닐 테니까.
-〈삶은 홀수다〉 p.17
김별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정해준 ‘생애전환기’라는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외로워져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의 삶에 숙명적 존재인 외로움을 인정하고 나니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의 삶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오로지 나로 오롯한 평화의 상태다.
또한 마흔의 고개를 넘어서니 죽음에 가까워진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면서 한 시대가 저무는 것을 느끼고, 존경하던 박완서 선생님의 영면 소식에 사는 동안 고통만큼 행복하셨을 거라 생각하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그린다. 그렇지만 김별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제고 피었다 지고 다시 피어나는 꽃처럼, 언젠가 우리 모두 꽃밭에서 만날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변치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내놓는다. 나이 대에 따라 반드시 해야 할 과제란 없으며, 삶은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