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신론
20세기 조선 최고의 천재 사학자(史學者)이자 사상가이고, 혁명가이고, 문학가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의 초기 저서 중 하나인 《독사신론(讀史新論)》을 현대인이 국어사전이나 옥편 없이 그대로 줄줄 읽을 수 있도록 〈대한매일신보〉에 50회에 걸쳐 발표되었던 《독사신론(讀史新論)》국한문 혼용 세로쓰기 원고를 현대어 국한문 가로쓰기 전자책(이펍 2.0) 판형으로 번역한 편역본(번역+가로쓰기 현대문 편집본)에다 초판본 《독사신론(讀史新論)》을 〈책 속의 책〉 형태로 삽입한 전자 도서이다. 그러므로 이 전자책 한 권으로 초판본 원본과 현대문 번역본을 대조해 가며 함께 읽을 수 있는 재미와 실리를 구현할 수 있다.
이 전자책 속에 〈책 속의 책〉 형태로 삽입된 초판본 《독사신론(讀史新論)》논문은 1910년 최남선(崔南善)이 경영했던 잡지 『소년』 8월호에 〈국사사론〉이라는 제목으로 전재되기도 했다.
이 책은 ① 단군 시대, ② 부여 왕조와 기자(箕子) · 부론(附論), ③ 부여족 대발달시대, ④ 동명성왕의 공덕, ⑤ 신라, ⑥ 신라 · 백제와 일본의 관계, ⑦ 선비족 · 지나족과 고구려, ⑧ 삼국흥망의 이철(異轍), ⑨ 김춘추(金春秋)의 공죄, ⑩ 발해의 존망 순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재가 이 논문을 통해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먼저 “국가의 역사는 민족의 소장성쇠(消長盛衰)의 상태를 서술하는 것이며, 영토의 득실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국가주의 ·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았던 점이다. 즉, 국사란 국가의 역사로서, 국가가 민족에 의해 성립된 유기체이므로 민족사가 곧 국사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국가의 주권을 행사한 주족(主族)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한 것이다.
반만년 간의 민족사는 부여족 소장 성쇠의 역사라 하여 부여족을 주족(主族)으로 인식하였다. 이것은 부여족이 살았던 만주를 우리나라 영토화하는 동시에, 현실적인 외세(일본)의 침략에 대한 자긍 의지를 뚜렷이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단재는 단군시대부터 발해의 멸망에 이르기까지를 부여족의 활동과 다른 민족과의 교섭 과정으로서 인식하고자 하였다. 단군의 정통이 부여로, 그다음에는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로 계승되며, 종래에 중시되던 기자 · 위만 · 한사군은 부여족의 역사에 부속시켜 서술하였다.
따라서 정통론 사학에서 주장되던 기자조선에서 마한 또는 삼한으로 역대(歷代) 정통이 계승된 것으로 파악되던 고대사 인식 체계가 단재 신채호에 의해 뒤집어지게 되었다.
또한, 긍정적으로 평가되던 삼국 통일의 역사적 의의를 비판해 김유신(金庾信) · 김춘추 및 김부식(金富軾)의 공죄(功罪)를 논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고대사를 반도 중심으로 보았던 종래의 역사 인식 체계를 만주 중심과 단군 부여족 중심으로 본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단재의 이 논문에 의거해, 한국의 민족주의 사학이 식민지화된 뒤에 식민사관에 대처하기 위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이미 애국계몽운동기에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서 싹텄음이 밝혀졌고, 민족주의 사학의 발생 상한선이 올라갈 수 있었다는 의의와 평가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