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조선 최고의 천재 사학자(史學者)이자 사상가이고, 혁명가이고, 문학가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의 초기 저서 중 하나인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를 현대인이 국어사전이나 옥편 없이 그대로 줄줄 읽을 수 있도록 1929년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간행되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국한문 혼용 세로쓰기 원고를 현대어 국한문 가로쓰기 전자책(이펍 2.0) 판형으로 번역한 편역본(번역+가로쓰기 현대문 편집본)에다 최초 발표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초판본을 〈책 속의 책〉 형태로 삽입한 전자 도서이다. 그러므로 이 전자책 한 권으로 초판본 원본과 현대문 번역본을 대조해 가며 함께 읽을 수 있는 재미와 실리를 구현할 수 있다.
이 전자책 속에 〈책 속의 책〉 형태로 삽입된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 초판본은 대하소설 〈임꺽정〉의 저자이자 당시 동아일보 취체역(取締役)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재직한 홍명희의 주선으로 1924년 10월 13일부터 1925년 3월 16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 형태로 최초 발표된 것을 1929년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조선사연구초』라는 제목으로 간행하였다.
이 원고가 동아일보 지상을 통해 연재되고 있을 때, 단재 신채호 선생은 친구 홍명희 선생의 표현처럼 “이역에서 회오리바람에 떠밀리어 여기저기 표박(飄泊)하는 배처럼” 일본 경찰들을 피해 떠돌아다니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계셨다.
벽초 홍명희 선생이 단재 선생의 원고를 수집하여 책으로 간행하겠다고 기별하고 출판할 준비를 하고 있을 그때는, 일본이 〈한일합방(1910년)〉을 단행한 지 19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였고, 이른바 〈조선총독부 취조국〉을 앞세워 1910년 11월부터 1937년까지 27년간 조선의 관습과 제도를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전국 경찰서를 총동원하여 조선 내의 서점, 향교, 서원, 양반가, 종가, 명문 세도가 등의 가택 수색은 물론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대마도까지 조사 범위를 넓혀 단군 및 조선사 관련 사료와 조선의 지리, 위인전, 열전류 등 40여만 권의 서책을 모조리 압수, 강탈하여 그중 20여만 권을 불태우고, 나머지 26여만 권은 일본으로 강제 반출하여 그들의 궁내부 도서관 등에 깊이 감추어 놓았던 시절인데(조선일보 1985년 10월 4일 11면), 단재 선생은 조선총독부의 심장에 비수를 꽂듯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를 동아일보 지상에다 발표하고 책으로 묶었던 것이다.
이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는 〈고사상이두문명사해석법(古史上吏讀文名詞解釋法)〉 · 〈삼국사기중동서양자상환고증(三國史記中東西兩字相換考證)〉 · 〈삼국지동이열전교정(三國志東夷列傳校正)〉 · 〈평양패수고(平壤浿水考)〉 · 〈전후삼한고(前後三韓考)〉 · 〈조선역사상일천년래제일대사건(朝鮮歷史上一千年來第一大事件)〉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6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상고사 연구방법론과 그 학술적 성과이다. 우리의 상고사 관련 사료들이 전부 한자로 기록되어 있는 현실에서 그것들을 올바로 해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자인 이두문(吏讀文)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를 통하여 상고사의 주요 인명과 지명 등 명사(名詞)들을 이해하게 되면 몇 가지 중대한 논쟁점들, 예컨대 평양(平壤)과 패수(浿水)의 관계,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의 구분과 그 위치 문제, 한사군(漢四郡)의 위치 문제, 따라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실체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비밀의 열쇠를 얻게 된다고 한 것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독창성과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章) 〈조선역사상 1천 년 이래 최대의 사건〉은 우리의 역사가 왜곡되기 시작한 배경, 즉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서(歷史書)로 인식되고 있는 《삼국사기》의 실체, 왜곡의 동기와 과정 등을 알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