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젝스옹이란?
아브젝시옹(abjection)은 혐오, 비천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말이다. 이 말은 문화적으로 타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 그런데 멜라니 클라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따라 더 근원적으로 살펴보면 아브젝시옹이라는 비천함은 생후 최초로 만나는 대상(어머니의 젖가슴)과의 분리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뜻한다. 스스로가 비천하게 되면서 한 생명을 분리하는 과정은 그 생명을 주체로 세우기 위한 고통과 사랑의 시간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주체가 되기 위해 비천하게 여기던 대상에 대한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다. 경계가 흔들릴 때마다 이 기억이 되살아나 자기는 자기로서 유지될 수 있다. 자기로 사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버리고 혐오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속에 있는 혐오와 공포의 출처이다.
지난 20세기와 새천년 초반의 기술과 정치는 인간을 자연적 거주지로부터 분리했고, 다시 한번 유목민으로 변화시켰다.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주 노동자들과 위성 방송과 인터넷을 이용한 국경 없는 항해자들, 정치적 박해를 피해 새로운 거주지를 찾는 망명자들까지 세계는 유목민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에 의해 공간의 의미가 흔들리면서 더욱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불안감은 생존의 문제와 닿아있고 삶의 질과도 깊은 연관을 가진다. 분명한 대안없이 미래로 던져져 있는 인류에게 분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삶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생각의 돌파구가 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거기에 대해 뾰족한 돌파구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 현재 삶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혁신의 길이 있음을 제안한다.
그 길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가 본 문명 해석에 대한 길을 가로지르는 방식이다.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이라는 형태로 공격성과 파괴성이 문명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여기에 사람이 사람에 대해 품는 적개심과 파괴 본능을 숨긴 죄책감이 자리 잡는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잘살게 될수록 미워하게 되고 경계해야만 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 관점에 반대하는 시선이 있다.
이 책은 우리 내면의 혐오와 파괴 본능을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만들고, 문명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나와 이웃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준다. 그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문화 기호학적 시각과 폴 리쾨르의 해석학적 관점을 통해서이다.
이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공포와 혐오의 기원’에 관한 크리스테바의 연구로서 아브젝시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2부는 ‘프로이트의 종교분석을 넘어서’는 폴 리쾨르의 상징 해석학이 그 내용을 이룬다. 그런데 1부와 2부는 비천함과 숭고함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각각의 글은 따로 읽어도 내용이해에 문제가 없겠으나 전체적으로 연결된 내용을 찾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