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변
우리나라 국민은 서양인에 비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층이 얕은 편이다. 코로나19의 오랜 지속의 사회적 영향일 수 있겠으나, 그보다 개인 또는 국민적 자부심을 잃었기때문에 그토록 우울증 환자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익숙하지 않으면 습관은 생성될 수가 없다.
작품의 품위인 빛나는 창작의 문장은 개인적인 고된 훈련에서 나온다. 시인은 깊은 공백에서 실없이 그저 헤매기도 한다.
건들건들한 행위에서 환기로 활짝 열어둔 창문 사이로 한가롭게 느릿느릿 드나드는 가벼운 실바람이 거실 커튼을 살랑살랑 흔드는 광경을 목격한다. 거실 바닥에 드리어진 한줄기 햇살을 굽어보며 환희의 송가를 부르기도 한다.
시는 팔목에 여벌을 걸친 인人이다. 그 여벌은 기온이 떨어지는 해질 무렵에 다시 껴입을 수 있다. 시는 막 피어 오른 파릇한 나뭇가지 이파리들이 창문을 두들기며 일어나라는 신호의 노래이기도 하다. 새 아침의 빛. 그렇다. 시는 향기로운 아침과의 달콤한 포옹을 기다리게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은 자립심이 강하다. 신선한 영감을 부여 받으려 다른 시인들의 글을 읽는 가운데서도 당사자인 자신의 몫을 찾아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잎사귀 없는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는 신비의 바람결을 글로 형성화하는 상상에 바탕을 둔 시에는 법규가 없다. 누구든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