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1765년(영조 41) 35살 되던 해에 계부(季父) 홍억(洪檍, 1722~1809)의 자제군관이 되어 연행하게 되었다. 그 여행의 목적은 하나는 마음 맞는 중국 문사와의 만남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국 문사들과의 만남의 과정을 벗들과 후손에게 전하려 함이었다고 술회한다.
홍대용의 바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비장(裨將) 이기성(李基成)이 안경을 사기 위해 유리창(琉璃廠)에 들렀다가, 회시(會試)를 보기 위해 절강(浙江) 항주(杭州) 전당(錢塘)로부터 상경한 엄성(嚴誠, 1732~1767), 반정균(潘庭筠), 육비(陸飛)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들과 만남 기간은 1766년 2월 3일 건정동(乾淨?)의 객점 천승점(天陞店)에서 시작되어 2월 29일로 끝을 맺는다. 한 달이 채 안되지만, 홍대용과 전당문인들과의 가슴 울리는 우정을 『건정동필담』 이라는 책명으로 간행하여 조선후기 문인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본고의 범위는 을유년(1765) 12월부터 병술년(1766) 2월 29일까지 필담 내용을 번역하였다.
본고에서는 기존 번역의 오류를 바로 잡았고, 전고, 인명, 지명, 말의 출처를 찾아 주석하였으며,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