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인생에도 다양한 맛이 있다
햇빛이 환하게 나온 날엔 동네 어귀를 한 바퀴 돈다. 키재기라도 하듯 줄 맞춰 서 있는 늘씬한 옥수숫대의 풍경, 수줍어하는 듯하면서도 바람의 리듬에 맞춰 살랑살랑 온몸을 흔드는 금버들강아지, 연분홍빛, 진보랏빛이 일품인 나팔꽃 부대. 곳곳에 아름다운 풍경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런 풍경들 속에 서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발길이 멈춰진다. 늘씬한 키를 뽐내며 우뚝 서 있는 진분홍 맨드라미 꽃, 고개를 들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초록 풀잎들의 올망졸망한 모습이 마냥 정답기만 하다.
계절은 여름을 뒤로하고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직 남은 더위 속에서 가을로 가는 계절의 모습이 조금은 버거워 보인다. 가끔 금버들강아지와 나팔꽃에 기대어 쉬고 있는 바람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람의 무게가 느껴지면 나팔꽃 무리 중 한 송이가 나팔소리를 내며 활짝 핀다. 그럴 때면 바람은 화들짝 놀라며 바람 친구들을 여럿 불러온다. 그렇게 동네 어귀 들판에서는 소박한 자연 속에서의 아름다운 계절의 향연이 근사하게 열린다.
가끔 일상을 내려놓고 낯익고 편안한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화로워진다. 그저 고요하게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기적처럼 힐링이 되는 순간들이 많다.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계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지금껏 보내왔고, 앞으로도 보내야 할 시간들을 보내며 살고 있다. 기쁨, 슬픔, 아픔 무수히 많은 감정들과 함께 살아 낸 소중한 시간들이다. 그 많은 사연들을 글과 말로 다 표현할 순 없지만 돌아보면 모두 우리의 삶이고 흔적이고 기억인 것이다.
온통 푸르름이 가득한 들판은 초록빛 바다를 많이 닮았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바다는 밤 새 먼길을 걸어 이 들판으로 스며들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더욱 진한 초록빛으로 만들고 함께 출렁거리며 이 들판에 소박한 생명들에게 좋은 기운을 만들어 줬을지도 모른다. 들판과 바다가 출렁거리며 겪었을 말로는 다 못할 무수한 사연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초콜렛 같은 달콤한 맛, 소화제 같이 아주 쓰디쓴 맛, 커피 같은 은은한 맛,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 풍경들도 인생의 달고 쓴 맛을 보면서 여기까지 왔겠지?
저 우거진 초록빛 속에도 우리들의 인생을 닮은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을까?
우리의 인생을 닮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싶었다. 저 초록빛 들판과 우리에게 영원한 마음속의 동경으로 살고 있는 초록 바다가 품고 있는 사연들을.
소박하고 잔잔한 숲과 바다가 되고 싶었다. 오늘도 내일도 살아있는 인생의 다양한 맛 안에서 울고 웃으며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인생들에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진정 삶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안성 대림동산에서 저자 홍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