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처럼 드러나는 순간!
저자가 사람을 꽃에 비유하는 건, 외로움이란 정서가 자신이 피어 있음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열망의 이면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듯,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에게 확인받고자 하는 우리의 꽃말은 외로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어져 있다. 저마다의 모양과 저마다의 색깔, 저마다의 향기로 채워진 화원 속의 ‘그들 각자’이자 ‘우리 모두’이다.
SNS적 자아를 아바타 삼은 가상에 몰입하는 현대인들. 그에 대한 이런저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나만 외로운 게 아니’란 사실의 확인은 어떤 연대감과 공감의 단서이기도 하다. 외로움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결핍이다. 그러나 외롭기에 그 텅 빈 마음 안에 잉태되는 것들도 있다.
저자는, ‘당신이 외로운 것처럼 나도 외롭기에’, 우리가 공유하는 외로움 덕분에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꽃 같은 존재감을 잃지 않기 위해 부대끼는 일상의 것들에 대한 소소한 사유를 담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분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조금씩의 해방감을 느끼길 바라며, 외로움은 같은 외로움으로 해방된다고 말한다.
꽃처럼 흔들리고, 꽃처럼 아름답고, 꽃처럼 향기롭고, 꽃처럼 피었다가 시들어갈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바람을 이겨내면 좋겠다고... 꺾이지 않는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출판사 서평〉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던가?
저자의 10대와 20대는 지독히도 외로운 시간이었다. 유독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일찌감치 세상과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들을 겪어낸 마음엔 굳은살이 박일 대로 박혔다. 상처에 가장 효과적인 약은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이란다. 감정의 바닥을 찍어 본 경험들은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진통제까지 건넸다. 그에게 그런 ‘약’ 중의 하나가 글쓰기였다.
박완서 작가는 글 쓰는 작업은 외로운 운명을 각오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충만한 감성을 위해서라도 외로워져 볼 필요가 있다. 타인에게 분산되지 않는 시선으로 스스로에게 전념하는 시간, 많은 철학자와 문인들이 그런 고독의 힘을 믿고 살았다. 니체가 높이 평가하는 고귀한 인간은 고독 속을 걷는 존재이다. 니체에겐 고독을 모르는 인간들은 정신적으로 독립이 안 된 그저 ‘평균인’에 지나지 않았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던가. 인간은 결국 외롭지 않으려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인‘간’이기에 관계를 벗어나 살아갈 수만도 없지만, ‘인’간이기에 그 관계 안에서의 존재의미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그런 성찰은 단절과 고립 속에서만 가능하다.
고독이란 감정마저도 관계를 매개로 한 이름일 정도로, 우리는 관계의 울타리를 벗어나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낯설어한다. 그러나 ‘발견’이란 것도 익숙한 것들의 낯선 뒷모습인 경우가 있지 않던가. 고독은 구조를 지탱하는 부품으로서의 역할이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 회귀하는 시간이며, 관계로부터 소외된 나 자신을 낯설게 돌아보는 발견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