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개천가에 흐르는 도랑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창포가 꽃을 피우지 않는가. 너무도 오랜 만에 보는 창포 꽃이라 반가운 마음에 헤아려보니 예닐곱 송아리다. 오염된 물이 흐르는 개천에 핀 눈부신 창포 꽃을 보면서 정신이 아득하여 말까지 잊고 말았다. 창포 꽃을 내 가슴에 안으려 물방울을 수없이 튕겨도 창포 꽃은 그대로다.
아마도 상상력을 주축으로 한 지난 ‘정(情)과 연민(憐憫)’이 담긴 이러한 정서를 삶의 나눔으로 연대한 따뜻한 서정으로 감싸 안는, 아주 친근하고 친숙한 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상상적으로 청포 꽃을 피어낸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마음을 유지하며, 더 순수하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해 혼신을 다해 나아가려고 한다.
돌이켜보면, 모든 수런거리는 별빛 아래 개똥벌레가 날고 난 그 뒤에 다시 되찾고 싶어 하는 마음의 빚이 내가 쓰는 시의 원류가 아니던가?
그런 한편 무엇보다 ‘千江有水千江月’로 천강에 비치는 달빛같이 세상 곳곳에 청정한 것들이 남기를 바라는 무위(無爲)의 몸짓이라 여겨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토록 내가 지향하는 길에는 시의 이정표가 꽂혀 있으나, 아직 그것을 찾지 못하고 다시 일흔 네 번째의 미로의 고개를 넘는 마음으로 어떤 날은 감히 시로 형상화 시킨 미래를 바라보려 한다.
― 서정(瑞靖) 이효녕, 책머리글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