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꽃 피는 산길
내가 하고픈 말은,
밤새워 비가 오는 날
그 비를 다 맞고 지리산 일백 리 산길을 걸었다오
혹자가 있어
무엇 때문에 걸었소 하면
어떤 이는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고 했지만
밤새워 걷고 걷고
또 걷고 싶었노라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또 혹자가 있어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칠흑 같은 밤이 지나고
여명이 산 능선을 넘어 피어오를 무렵
구월이면 능선에 피어나는
하늘보다 푸르고 바다 빛보다 짙은 투구꽃 꽃밭에서
밤새워 사랑을 속삭이다 동트는 소리에
수컷 따라 꽃가지에 폴짝 나온 암컷 한 마리의 혀뿌리가
투구꽃 쪽빛보다 더 멍이 들었더이다
내가 하고픈 말은,
밤을 새워 비를 맞고
산길을 걷는 내내
한없이 한없이 행복했노라는
이 말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