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유냐 존재냐(1976), 에리히 프롬(1900~1980)
소유所有냐 존재存在냐(To Have or to Be, 1976),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1980)
12월(月)이다. 이렇게 또 한해가 저문다. 이제 앞으로, 몇 년(年)이나 더 생존(生存)할 수 있을까. 인생(人生)에서, 죽음이라는 불가피(不可避)한 현상(現狀)을, 어떻게든 외면(外面)하거나 회피(回避)하며 살아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그래서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역사(歷史)에는, 어떻게든 죽지 않으며 영원불멸(永遠不滅)하려는, 인류(人類)의 거센 욕망(欲望)이 상존(常存)한다.
첨단(尖端)의 과학기술(科學技術)을 실현(實現)하고 있는, 21세기(世紀)에도 여전(如前)하다. 하지만 애석(哀惜)하게도 현재(現在)에 이르도록, 인간존재(人間存在)가 죽음을 피(避)할 수 있는 방편(方便) 따위는 부재(不在)하다. 그대는 어떠한가. 혹여(或如) 지금(只今) 당장(當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필자(筆者)는 전문적(專門的)으로 인문학(人文學)을 연구(硏究)하는 인문학작가(人文學作家)인 탓에, 어쩌면 직업적(職業的)으로 죽음을 사유(思惟)하지만, 살아내는 동안, 실제(實際)로 죽음의 위협(威脅)을 체감(體感)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니 다행(多幸)이라면 다행(多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뉴스보도(news報道)를 보면, 실(實)로 예기(豫期)치 않게 죽음을 맞는 사건(事件)을, 수시(隨時)로 접(接)할 수 있다. 그래서 팔자(八字)라거나 운명(運命)이라는 말이, 회자(膾炙)되는 것이다.
물론(勿論) 대부분(大部分)의 인간존재(人間存在)들은, 자연적(自然的) 수명(壽命)을 다하면서, 자연사(自然死)하는 것이 통상적(通常的)이긴 하다. 아마도 현실세계(現實世界)에 생존(生存)하는 인간존재(人間存在) 대부분(大部分)은, 영원불멸(永遠不滅)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오랫동안 장수(長壽)할 것으로, 희망(希望)하고 예정(豫定)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평균수명(平均壽命)이 전반적(全般的)으로 증가(增加)하였다고 해도, 그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保障)은, 그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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