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의 파리를 사랑해
“흘러간 시간이 바꾸어버린 사람과 관계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운 건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 우리들의 시간이다.”
1980년대.
시절은 불온했지만 그래도 청춘은 싱그러웠다. 그때 그걸 느끼지 못했을 뿐. 격앙돼 있던 그 시절에 눌려 있었고, 미래는 두꺼운 장막에 가려진 듯 답답했다.
‘그저 청춘을 즐기며 세월의 흐름에 몸을 실었어도 어차피 지금의 나로 살 것을……’
나는 범륜사로 간다. 아버지 기일을 즈음한 이 무렵엔 늘 아버지 위폐를 모신 그 절에 들러 내가 아는 모든 위폐들에 한 번씩 절을 하고 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지금 내 나이 즈음. 그때는 아버지가 그렇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지 몰랐다. 젊었던 나는 나이를 이렇게 빨리 먹는 건지 몰랐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떠난 사람을 기준으로 내 나이를 계산하게 된다. 해가 바뀔 때마다 나는 계산을 한다. 그들보다 내가 몇 년을 더 살고 있는지. 지금 나는 그 싱그럽고도 불온했던 시절을 함께 났던 친구들보다 10년 넘게 더 살고 있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은 잊히고, 내겐 지나간 봄의 잔상과 살아내야 할 시간만이 남았다.
□ 양선희 장편소설 『5월의 파리를 사랑해』
2015년 문예중앙에서 나왔던 동명의 소설을 독서일가에서 전자책으로 재출간한다. 이 소설은 2016년 세종도서에 선정된 바 있다.
지금은 86세대라 불리는, 198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세 친구의 이야기.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던 시대, 운동권이 주류 세력이었던 대학가에서 고시 공부를 하며 자신의 미래에 올인했던 ‘범생이’들의 이야기다.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끼리도 고시의 당락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경쟁심과 질투는 패자들의 몫이었다. ‘나의 성취’가 더 중요했던 청춘의 그때엔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달성한 성취의 정도에 따라 서로의 길이 갈리고 각자의 삶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날아온 옛 친구의 유서와 같은 이메일. 매듭짓지 못한 채 유보했던 옛 친구들은 다시 그 시절을 복기하기 시작한다.
□ 작가의 말
문예중앙에서 출판됐던 소설 『5월의 파리를 사랑해』를 다시 낸다. 이 소설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건 고스란히 나 홀로 견뎌야 하는 ‘나의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가족도, 친구도 모두 내 어느 특정 시간 안에 존재할 뿐 나와 영원히 동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나의 시간이 변하면 관계도 변하는 게 삶이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사실. 어쩌면 그래서 빛나던 어느 한 순간을 가슴에 담고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변치 않는 것은 그 순간일 뿐이다. 이미 흘러간 시간이 바꾸어버린 사람과 관계는 돌아오지 않는다.
‘5월의 파리’도 그런 뜻이었다. 개인적으로 파리는 힘든 기억밖에 없는 도시다. 철도가 파업을 벌였던 11월 출장길에 들렀던 파리는 춥고, 말도 통하지 않고, 끝없이 걸어야 했던 기억만 남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였다. 그때 지인이 내게 ‘5월의 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얘기해주었다.
내가 보지 못한 ‘5월의 파리’와 힘들고 아무 감흥도 없었던 ‘11월의 파리’는 같은 파리였지만 오직 시간만이 달랐을 뿐이다. 이 개인적인 경험을 제목으로 표현했으나 설명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다 이번에 독서일가에서 다시 이 소설을 출판하며 제목을 바꾸었다.
사람은 매순간 이별을 하며 산다. 이별은 사람의 숙명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별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 순간, 그 시간과의 이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