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본: 『新編 近代美人?(상)』(岩波文庫)(明治美人?)
과일 모습의 얼굴이 도쿠가와 시기부터 미인의 전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명치기(明治期)는 미인의 전형을 깨뜨리고 혁명을 이루어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과일형 얼굴은 상류 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명치 미인은 전통적이며 역시 인습에 사로잡혀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미인형에도 각각 당연히 법칙이 있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300년의 시대에도 미인이 반드시 같은 형태라고는 할 수 없다. 우키요에(浮世繪)의 거장들이 남긴 그림을 보면 그 변화를 알 수 있다.〈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