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보였다. 월말이라 사람들로 빼곡한
은행 창구에 그 남자가 눈에 띄었다.
나는 못 본 척 애써 고개를 숙이고 전표와 씨름하는 척했다. 고개를 들자 내 앞에 그의 모습이 우뚝하게 서 있다. 유난히 푸르스름했던 턱밑의 수염을 깎지 않아 거무스름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그의 눈동자와 나의 눈동자가 반짝하고 부딪쳤다. 내 앞에 서 있던 그 남자는 대뜸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내에 책이 필요해서 나왔는데 돈이 부족해 날 찾아왔다면서 약간의 현금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순간 나는 무슨 연유인지 “이자가 고율입니다. 그래도 쓰시겠습니까?” 말했다. 미소가 보일 듯한 표정의 남자는 yes도 아니요, no도 아닌 덤덤한 얼굴을 하고 서 있다.
_ 〈그해 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