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셀러의 힘은 작가의 작업실에 있었다!
생계형 작가에서 스토리텔러로
소설가 김호연. 언제부턴가 김호연의 소설이 팬덤을 중심으로 독자들의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소설가 ‘김호연’은 유명세를 넘어서 한국 출판계에서 밀리언셀러의 역사를 매번 새롭게 쓰고 있는 이름이 되었다. 사실, 소설가 김호연은 기존 문단계에서 낯선 이름이었다.
그는 흔한 문학계 ‘등단 키드’가 아닐 뿐 아니라, 대학에서 소설을 전공한 작가도 아니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만화 스토리상과 영화 공모전 등에 꾸준히 당선되며 대본 작가생활로 밥벌이를 해 온 생계형 작가였다.
정작 김호연이 소설의 ‘맛’을 처음 느끼게 된 계기는 2000년대 초반 센세이션을 일으킨 PC통신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소설의 선두 작가였던 귀여니의 소설을 담당했던 소설편집자로 출판계에 입문하면서다. 이제 소설 작가로서의 입문은 수십 년을 유지해온 등단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살아남을 수 있는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소설 스토리의 전개와 재미, 그리고 구조가 달라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편 김호연이 소설편집자로 일한 이 당시의 소설은 이전의 국내 소설의 스타일과는 다른 양상 보이면서 외국 소설이 국내 독자들의 재미를 충분시켜주었다. 조엔 롤링(《해리 포터》 시리즈), 톨킨(《반지의 제왕》), 댄 브라운( 《다빈치 코드》) 등 판타지 작가의 영미소설과, 베르나르 베르베르(《나무》 《개미》)와 기욤 뮈소(《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구해줘》 의 프랑스 소설, 오쿠다 히데오(《공중그네》), 히가시노 게이고(《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 미야베 미유키(《모방범》)를 위시한 일본 소설 등에서 이러한 특징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처럼 디지털 밀레니엄 시대에서 소설의 변화기를 경험한 생계형 작가 김호연은 인터넷 소설, 만화스토리, 영화 시나리오, 판타지 소설, 대중적 감성소설, 미스터리, 더 나아가 웹소설에 이르기까지 스토리의 다양한 장르와 문법을 두루 섭렵하면서 소설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에게 장르 문학은 물론, 만화와 영화는 그만의 스토리텔링 작법을 키우는 자양분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어쩌면 소설가 김호연은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생뚱맞게 ‘대박 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소설 덕후, 작법서 덕후, 만화 덕후, 영화 덕후로서 쓰고 싶은 소설을 꾸준히 쓰고 다시 고쳐 쓰고, 분석하고 다시 고쳐 쓰기를 반복하면서 한 편의 완성작을 이뤄낸 것이다. 비로소 소설가 김호연은 생계형 작가에서 스토리텔러가 되었다.
결국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체화하는 자가 작가다
김호연은 22년을 작가로 글을 썼고 10년을 소설가로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소설만의 문체와 화법, 묘사와 주제가 저절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추어와 프로 작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형편없는 작품을 버리느냐, 아니면 고쳐 쓰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 유명 시나리오 작가 블레이크 스나이더의 말처럼, 매번 고쳐 썼지만 여전히 데뷔작 《망원동 브라더스》로 조금 알려진 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데뷔작이 세계문학상 당선작이라는 이름값을 한 것에 비해, 후속작 《연적》 《고스트라이터즈》 《파우스터》는 연달아 독자와의 소통에 실패하면서, 생계형 작가의 유지조차 고민해야 할 판이 되었다.
이때 그는 소설 쓰기에 대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소설 쓰기는 한 번 배우면 절대 까먹지 않는 자전거 타기와는 다르다는 것.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게 소설이었다. 그래서 그의 고민이자 숙제는 자신만의 작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데로 귀착되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결국 작법은 스스로 만든 기술이며, 그 기술을 만드는 능력은 일상의 반복된 작업 패턴, 즉 이른바 루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글쟁이가 아닌 소설가 김호연에게 그 루틴을 발휘할 수 있는 고정 공간 ‘작업실’, 그 작업실에서 쓸 글감을 떠올리는 ‘산책’, 그리고 집필활동의 근육이 되는 ‘독서’ 이 네 가지 요소가 소설 쓰기의 친구가 되어야 했다.
글쓰기 역시 왕도는 없다. 결국 꾸준함만이 정답이고, 김호연에게 그 꾸준함의 지속성을 가능케 한 것이 루틴과 작업실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작업실 절대주의자’라고 명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소설 쓰기의 공간에 관한 것이 작업실이고, 소설 쓰기의 시간에 관한 것이 루틴인 셈이다. 작가에게 작업실은 글쓰기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한 진공의 공간이(공간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글쓰기 세계로 진입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시공을 초월한 정신적 웜홀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루틴은 작가의 삶이 마치 운동선수의 그것과 엇비슷하다는 데서 단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둘 다 머리와 몸을 쓰는 플레이어라는 것도 유사하지만, 무엇보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연습과 완성을 반복적으로 이어나가야 한다는 방식도 닮았다. 정말 징글징글할 정도로, 정말 지리멸렬할 정도로 지난한 반복과의 싸움이 프로가 될 자격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흔히 말하는 ‘영감’과 ‘뮤즈’는 글 안 써지는 푸념과 타령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 작가에게 글쓰기의 루틴은 뮤즈가 오길 기다리는 게 아닌 뮤즈를 찾아나서는 행위나 다름없다.
아울러 작업실과 루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산책이었다. 발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 그것은 아이디어와 아이디어가 반응하고 캐릭터와 캐릭터가 들끓는 김호연의 창작 루트나 다름없다. 그래서 산책로는 ‘글쓰기의 용광로’가 되는 것이다. “산책이 아니었다면 내 머리는 터져버렸을 것이다.”라고 토로할 정도로 산책을 중시했던 찰스 디킨스가 런던의 밤거리를 걸으며 도시의 이면을 소설로 썼다면, 소설가 김호연은 때로는 글감을 구상하기 위해, 때로는 작품 속 난맥을 짚어내기 위해 산책을 했다. 그래서 산책자는 작가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의 증산간 길에서 그토록 풀리지 않던 《연적》의 클라이맥스가 터져 나왔고, 대전의 갑천 산책로에서 《파우스터》의 반전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에게 영감과 뮤즈의 근원은 산책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김호연은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체화하는 자, 비로소 작가가 되어갔다.
살아남는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이제 최적의 작업실도 구했고 나름의 루틴도 잡아가고 있었다. 산책로 혹은 그에 준하는 작품 구상도 이어나갔고 독서력도 두터워졌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글감’이었다. 사실 글감은 소재와 다른 개념이다. 소재가 글을 쓰는 바탕이 되는 재료라면, 글감은 소재라는 재료에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첨가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아이템’이라고 부른다. 결국 소설가에게 아이템이란 ‘소재 + 아이디어’다. 작가마다 이야기의 탄생을 발굴하는 아이템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소설가 김호연만의 아이템 발굴은 몇 가지로 귀결되었다. 먼저, 쓰려는 분야에 대해 잘 알아야 했으며, 다음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의 방향을 제대로 찾아야 했다. 그와 함께, 아이디어를 적절하게 결합해야만 했다.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아이템은 작가의 아는 지인이 생뚱맞게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실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가장 흔한 공간인 편의점에서 사람들이 불편하지만 서로를 간섭하며 인간미를 나눈다는 설정을 완성한 것은, 그 공간에 노숙자를 투입하면서였다. 편안한 공간이어야 할 편의점은 불편함의 대명사인 노숙자는 소설의 이야기를 불편하게 만들어나갔다는 방향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여기에 여러 사건과 설정을 구축하는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조합하느냐가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이는 관건이었다. 소설 《파우스터》역시 괴테의 원작에서 ‘악마와의 거래’를 ‘사람 머리를 해킹하는 기계’라는 아이디어와 결합해서 탄생된 것이다.
모든 글쓰기 과정이 그렇듯, 특히 소설 쓰기에는 아이디어만큼이나 중심축을 이루는 뼈대가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플롯, 즉 이야기의 줄거리다. 물론, 모든 소설에는 플롯이 존재한다. 다만, 그 플롯을 미리 짜고 쓰느냐, 짜 놓지 않고 창작의 과정에서 완성하느냐가 작가마다 조금 다를 수 있다. 소설가 김호연은 소설 쓰기는 낯설고 힘겨운 모험이기에, 그 모험을 제대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지도’를 플롯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도를 잘 챙겨야 길을 잃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지도는 변경 불가능한 정형화된 것이라기보다 목적지를 향해가면서 주변의 다양한 경로를 보여주는 능동적인 내비게이터나 다름없다.
김호연의 소설에서 능동적인 내비게이터로 한몫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천태만상의 캐릭터들이다. 소설에서 캐릭터는 아이디어인 동시에, 플롯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언제 등장하느냐, 한편 어떻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전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만큼 소설가에게 캐릭터를 창조하는 권한은 신과 맞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생계형 글쟁이 김호연에게 ‘소설가’라는 직함을 부여한 데뷔작 《망원동 브라더스》는 캐릭터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거창한 플롯이 없는 이 소설은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들 간의 갈등과 사건이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내는 시너지가 되었다. 옥탑방에 모인 이 시대의 다양한 루저들. 그들의 대책 없는 좌중우돌 생활이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궁금증이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케이스다.
한편, 《불편한 편의점》에서도 역시 캐릭터들의 전사(前事)와 캐릭터들 간의 조응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작업의 절반을 야간 알바생 캐릭터를 구상하는 데 보냈다고 할 정도였다. 편안해야 할 편의점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 누구를 투입하지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궁리를 했다고 한다. 그 후보군으로 탈북자 청년, 조선족 아주머니, 베트남 유학생, 원어민 강사, 괴짜 유튜버, 심지어 외계인까지도 떠올렸다. 그러던 중 노숙자가 낙점되었다.
이 책은 소설을 위한 ‘작법서’가 아닌, 사적인 소설 ‘작업서’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소설가 지망생들에겐 소설의 처음을 시작하는 한 문장을 쓰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작법서들이 소설을 쓰고자 하는 미래의 작가들을 위한답시고 이러쿵저러쿵 글 쓰는 법을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이러한 글 쓰는 기술과 방법도 소설가로서 글을 쓸 수 있는 마음과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야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밀리언셀러《불편한 편의점》의 김호연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무명작가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에게도 역시 소설 쓰기가 맨손으로 언 땅을 파는 것처럼 고되고 지난한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막막한 심정으로 텅 빈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는 날이 많았고, 작가인 자신만을 위한 작업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오랜 무명 세월을 딛고 밀리언셀러 소설가로 거듭나기까지의 이야기. 그렇게 소설가 김호연의 작업 경험이 오롯이 독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에세이로 탄생할 수 있었다. 다음카카오의 연재 플랫폼 ‘브런치’에서 최초 연재했던 내용 일부를 전면적으로 새롭게 업그레이드한 다음,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글쓰기의 태도와 소설 쓰기의 노하우를 총 정리하여 탄생한 이 에세이는, 작가 김호연이 소설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그동안 생각하고 품어왔던 바를 숨김없이 독자들에게 고백하고 있는 최초의 시도이다. 동시에 그가 생각하는 ‘소설’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숨김없이 밝힘으로써 미래의 김호연을 꿈꾸고 있는 새로운 예비소설가들에게 앞으로 어떠한 소설을 써야만 하는지를 제시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