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이 뭔지 아노?”
아버지께서 식사 시간에 물으셨다. 남편이 신학을 하면서 전도사를 하는 동안 친정에 얹혀살 때였다. 대답은 뻔하게 전도사였다. 나나 남편에게나 모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지만 하나님을 모르시는 아버지이기에 웃으며 넘겼다.
“그들은 선택한 가난이에요, 아빠. 거룩한 가난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받아넘겼던 나의 마음에도 늦은 결혼에 친정에서 더부살이하는 이 상황이 편치만은 않았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부모님의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게 부끄럽고 싫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감동으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5년간 친정에서 생활함으로 친정 부모님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평생을,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오셨지만, 신학생을 사위로 삼아 생활을 책임져 줌으로써 하나님께 빚을 지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답이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 기도를 한 후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우리가 여기 있음으로 나는 하나님께 부모님을 축복해 주시도록 만드는 셈이야. 단순히 신세를 지는 것만은 아니야.’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났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부모님은 하나님을 믿게 되셨고 지금은 항상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셨다. 암을 극복하시고 고혈압 당뇨의 지병에도 끄떡없이 하루하루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아버지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신다.
30여 년 전 나 홀로 외롭게 하나님을 믿을 때는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는 일들이었다. 30년이 흘러 이제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우리는 감히 기독교 가문이라 말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앞으로 30년 후 그리고 우리 가문의 100년 후 200년 후를 본다. 내가 천국에 가고 난 후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하면서 기독교 가문으로 이어질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설렌다.
꿈도 못 꾼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언제나 꿈이라도 꾸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여전히 동일하게 효과가 있다. 마치 구구단에서 5 곱하기 5가 25인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듯이 그 말씀도 의심의 여지 없이 사실이다.
말씀에 기록된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고 믿고 될 때까지 기도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여전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행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