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열 명의 비건 지향인이 낫다”
모두가 더 자유로운 세계으로의 초대
한 번쯤 비건을 생각해본 사람에게 비건을 실천하기에 앞선 가장 큰 장벽은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결심일 것이다. 비건을 시작하는 사람은 내 안팎에서 ‘완벽함’이라는 잣대가 세워지고 쉽게 검열의 도마 위로 올려진다. ‘식물은 안 불쌍하느냐’는 식의 외부의 비난은 이미 케케묵은 이야기이다. 또, 육류는 섭취하지 않지만 해산물·달걀은 선택적으로 섭취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나 완전한 수준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비건 옵션을 취하고자 하는 비건 지향인들에게도 ‘무의미하다’ ‘모순적이다’ ‘유난 떤다’는 식의 폄하적 시선이 뒤따른다.
하지만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열 명의 비건 지향인이 낫다’! 작가 역시 당장 집에 있는 식재료에 동물성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선에서 비건 레시피를 따라해볼 것을 권한다. 예컨대, 비건 마라탕 레시피를 소개하며 ‘육수를 쓰지 않는 마라탕집을 찾기 어렵지만, 100퍼센트가 아니어도 고기나 어묵을 추가하지 않고 식물성 식단을 지향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흔들려도 계속 나아가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독자들의 비거니즘에 대한 마음속 진입장벽을 또 한번 허문다. 보다 유연한 태도로 우리 각자의 삶에 비건이라는 근사한 편집숍을 들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는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비건한 미식가》와 함께 부담 없고 만족스러운 비건 생활을 거듭할수록, 모두가 더 자유로운 방향으로 내 삶을 가꾸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애인이 좋아도 하루 종일 애인만 생각하고 살 수 없듯이, 언제나 비건이 1순위일 수는 없었습니다. 한계를 인정하기까지 어려웠습니다만, 흔들리며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어쨌거나 헤어지지 않으면 연애 중 아니겠습니까? 초심은 잃었을지 몰라도 이별은 안 했습니다. (중략) 어쩌면 내 인생은 완결되지 않는 시작의 합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