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언
오래전 막연하게 나는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인생의 존재적인 진실을 말해내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기에 그렇게 말한다는 이유도 근거도 별로 없이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그냥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라는 말 속에서 그렇게 보였기에 그랬던 것 같은데, 모랫바닥에 성을 쌓았던 것 같이 바닥이 무너지니 모든 것이 여지없이 다 무너졌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같이 함께 죽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내 인생이 내 것인 것으로 알고 살아온 삶은 가짜이고,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살아야 하고, 바로 그게 인생의 존재적인 진실인 것으로 보여진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 10년 전 그리고 5년 전, 몸과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나는 사건이 일어나니 난 여지없이 바닥에서부터 무너졌다.
거의 회복할 수 없는 마음의 병에다 몸마저 망가졌지만, 그래도 열심히 이겨내려고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지내보았다.
그러나 내 젊은 날 좋은 시절을 함께해 온 사람에 대한 커다란 실망은 그나마 남은 의지할 만한 곳마저 완전히 없어져버리게 하니 점점 살아야겠다는 의욕도 사라지고 있었다.
급기야는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내 삶에 대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허망과 허탈이 쓰나미가 되어 밀려오는데 더 이상 삶을 유지할 힘이 없었다.
그때 이 말이 보였다. 내가 읽고 있던 책에서 being(있음)이라는 말이 보였다. 이 말은 창세기 2-7절의 a living being의 being으로 서서히 연결되었다.
being(있음)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있는 느낌을 주는 말이다.
뭐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있음(just being)이라는 말은 애매한 말인데 왠지 나에게 평화를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존재라고 번역을 많이 하고 있는데, 존재(existence)라고 하면 보이고 있는 어떤 물건도 포함하고 있는 것 같기에 being(있음)이 주는 보이든지 안 보이든지 그냥 있는 온전한 느낌이 안 나서 나는 주로 있음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이제 being(있음)이라는 말만 보아도 설렌다.
바로 이 being(있음)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독자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고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은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