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 편은 중화민국 국민당의 지도자이자 중국 정부의 전 지도자였던 장개석 총동은 1938년 12월 26일 천양에 있는 국민당 사령부의 주간추도모임에서 연설을 행하였다. 이 연설은 일본 수상이었던 고노에의 연설 직후에 그에 대한 회답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글은 이 연설문의 끝부분이다.
네루 편은 인도 수상 자와하랄 네루는 간디의 동료였으며 인도 민족주의 운동에서 탁월한 활약을 했다. 그는 독립에 대한 보장없이 인도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기 때문에 대전기간 동안 투옥되었다. 1947년 네루는 독립된 인도의 초대 수상이 되었다.
이 글은 네루가 행한 두 가지 연설의 일부이다. 첫 번째 것은 1947년 3월 23일 뉴델리에서 행한 아시아회의 개막연설이다.
둘째 것은 간디가 암살당한 지 3일 후인 1948년 2월 2일 뉴델리의 제헌의회에서 행한 연설이다. 존경하는 지도자의 죽음은 모든 인도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네루는 그들의 커다란 상실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 편은 일본의 민예연구가이면서 한국의 예술과 그 이적 가치에 대하여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야나기는 우리에게 놀라운 직관력, 해박한 식견을 보여준다. 그는 이조 백자의 미적 가치를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선구자일 뿐 아니라, 경주의 석굴암에 대해서도 최초로 그 예술적 신비를 조명해 보이기도 하였다.
야나기는 동경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양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저서로 《유종열 선집(柳宗悅 選集)》(전 10권) 등이 있다.
이 글은 야나기가 조선에 대한 강연을 끝낸 자리에서 청중의 한 사람이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해 분개의 뜻을 표하자 그에 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