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트 편은 이집트의 군인 ? 정치가. 나셀과 함께 ‘자유장교단’을 결성하고, I952년의 이집트 혁명 때에는 ‘자유장교단’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1964년에 부통령 겸 국민회의 의장을 거쳐, 1970년 9월에 나셀 대통령이 급서하자 그 뒤를 이어 10월에 제 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현실주의적인 온건 노선을 취하여, 1977년에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중동평화의 길을 열었고, 이로 인하여 1978년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이어 1979년 3월에는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에 조인하였다. 그는 1981년 10월 6일 카이로 근교인 나스루에서 대 이스라엘 10월전쟁 8주년 기념식장에 참석하였다가 암살자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이 글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 국회(쿠네세트)에서 행한 연설문의 일부이다.
나에레레 편은 탄자니아의 정치가인 니에레레는 우간다의 마케레레 대학에 다니다가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으로 옮겨서 공부하였다. 1954년 탕가니카 아프리카 민족동맹 TANU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고, 1961년 탕가니카 자치정부의 수립 뒤 초대 수상이 되었다가 1962년 공화국 성립과 함께 대통령이 되었다. 1964년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통합하여 탄자니아가 성립되자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비동맹주의를 견지하고 있으나, 소련 ? 중국과의 경제협력관계를 증대하고 있다.
이 글은 니에레레가 1961년 탕가니카 수상으로 있었을 당시 세계청년회의 World Assembly of Youth가 개최한 제2차 범 아프리카 세미나에서 행한 연설로서, 흑(黑) 아프리카주의의 지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파농 편은 프랑스령(領) 마르티니크 섬의 평론가 ? 정신과의사인 파농은 알제리의 독립운동과 콩고(자이르 공화국)의 루뭉바에 협력하여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흑인간에 연대감을 드높인 혁명가이기도 했다.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지도적 이론가이며 의사로서 협력하고, 가나 주재 대표를 맡기도 하였으며, 루뭄바의 고문을 암은 일도 있다.
이 글은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중의 일부로서 식민지 문화의 허실을 분석 ? 비판하고 민족문화와 예술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