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지배계층이 남긴 역사 기록을 살피면 이들의 민낯을 가끔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들의 민낯이란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입신출세와 가족 그리고 가문과 소속 당파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발생한 제자백가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정책이나 교훈을 취사선택해 국가를 경영하지 못하고 유가 사상을 유일 사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국력이 부실해져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았을 때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렇다고 유가에서 들추고 싶지 않은 공자 집안의 3대의 이혼과 일부 유학자들이 허위라고 주장하는 공자가 소정묘를 주살한 내용을 조선에서는 상하가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등 마이웨이를 걷는 듯 했지만 필요에 따라 인용했을 뿐이었다. 왜란과 호란을 당했어도 어느 왕도 어느 정승도 판서도 백성들에게 공식 사과하지 않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장수나 의병장들을 토사구팽한 민낯을 보여주었다. 〈택리지〉에 수록한 한시가 〈연려실기술〉에서는 11글자가 바뀌었는데 한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추적하다가 참으로 실망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일이 벌어졌는지 한심했다. 맹호로부터 주군인 태종을 구한 호위무사 김덕생에 대한 기록이 태조실록에 삽입된 것은 실록 편찬자들이 태종의 권위를 높이느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도 밝혀냈다. 김덕생은 활을 쏘아도 쏘지 않았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융통성 없는 국법 때문에 죽게 된 것을 밝혀냈다. 이밖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기녀가 쓴 한글 시조도 소개한다.